[생명연 리포트] 생물학의 산업적 활용을 촉진하는 바이오파운드리 구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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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승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장/김하성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 선임연구원바이오 공학 기술(BT)이 발전하고 있다. 유전자를 합성해 생명체를 만든다는 다소 SF 영화 속 이야기같은 연구도 상당수 진행됐다. 합성생물학이라고 불리는 이 연구는 향후 국력을 좌우할 중요한 연구 과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의 약 70%가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화학 분야의 공업적 발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생물 분야에서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유기산, 항생제 등 새로운 산물들이 속속 등장하였으나 미생물 발효에 제한된 산업이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생물학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recombinant DNA technology)’을 적용해 의약, 화학, 식품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 기술로서의 가능성을 처음 발견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유전자들을 클로닝(cloning)해 미생물, 식물, 동물에서 고부가가치 소재를 대량생산하는 ‘유전공학(geneticengineering)’의 시대로 발전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기존 DNA재조합 기술의 틀을 벗어나 생물학이 제공하는 공학적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기술로 재편할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는 대량 유전자 정보의 확보 및 초고속 유전자 합성이 현실화된 데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도 2017년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을 통해 바이오R&D 혁신기술의 하나로 합성생물학 발전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나라 바이오 기술력, 미국의 76% 수준
기술적 환경 외에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적 환경의 급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요즘 세균의 약 10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장 작은 생명체 때문에 유래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최초 보고된 후 지난 1년간 약 170 만 명이 사망하고 전세계 165개국의 휴교와 봉쇄조 치가 이어지고 있으며 2020년 세계경제 성장률은 -5%로 계속 낮아지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공적인 방역 모델로 평가 받으며 그 일부가 12월 국제표준으로 등록되기까지 했으나, 최근 코로나19의 변종 출현과 국력에 따라 백신 확보 순서가 갈리는 것을 보며 결국 바이오기술의 국가경쟁력 확보가 절실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 바이오 기술력은 미국의 76% 수준으로 약 5년 정도 뒤져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7세기 현미경의 개발에서부터 이어온 선진국의 바이오기술의 탄탄한 기초와 폭넓은 연구인력에 비하면 우리나라 바이오 기술은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
이러한 기술력의 격차를 극복하고 선도형 R&D 체계로 변환하기 위한 방법은 바이오 연구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노동력과 개별적 경험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실험 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표준화된 프로토콜에 기반한 실험의 필요성 그러나 바이오 연구의 속도를 향상시키는 것은 다른 공학 분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어려움이 있다. 하나의 세포 안에서 100만 개 이상의 단백질과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대사물질들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세포의 생장과 생리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한 명의 바이오 연구자가 미생물을 배양해서 항생제 내성을 테스트하는 경우에 오늘 배양한 미생물과 내일 배양한 미생물은 같을 수 없고 따라서 테스트 결과도 다르게 된다.
일반적으로 바이오 연구는 반복 실험을 수행해서 계산된 평균값을 이용해 실험의 결론을 판단한다. 만약 다른 바이오 연구자가 위와 동일한 방법으로 실험을 수행하는 경우 그 차이는 더 커질 수 있다. 전자와 같이 한 연구자가 반복 실험을 수행한 경우 실험의 신뢰성을 반복성으로 평가하고 후자와 같이 다른 연구자가 반복 실험을 수행한 경우에는 재 현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
미지의 생명현상에 기반한 바이오는 반복성과 재현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암생물학 분야의 경우 출판된 논문들의 재현성이 10% 정도로 낮은 문제를 지적하고 표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반복성과 재현성의 향상을 위해서는 표준화된 프로토콜에 기반한 실험이 필수적이다.
IT를 만난 합성생물학 2000년 초반 소개된 합성생물학은 공학의 방법론을 적용한 생물학으로서 관찰과 발견에 기반한 생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발명으로 바꾸어 놓았다. 합성생물학은 생명 현상을 DNA 부품과 유전자 회로로 구성된 공학적 결과물로 보며, 특히 DNA 부품과 이들을 조립하는 방법을 표준화해 기존 생물학에서는 구현할 수 없었던 새로운 대사회로와 균주를 구현해냈다.
표준화된 생물공학적 도구들은 로봇, 정보기술 (IT)과 급속히 결합되기 시작했고 2009년 합성생물학과 로봇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균주 개량 기업인 징코 바이오웍스라는 스타트업이 설립되었다. 질소고정 미생물을 코팅한 인공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작물(바이엘 협력), 새로운 항생제 개발(로슈 협력), 코로나19 백신 최적화(모더나 협력) 등의 연구를 수행하며 설립 약 10년 만에 4조5000억 원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기존보다 약 5~20배 빠른 속도로 실험을 수행하며 생산된 빅데이터는 인공지능(AI)에 의해서 분석되어 복잡한 생물학적 문제를 해결한다. 또 다른 합성생물학 기업인 아미리스는 기존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데 약 1500만 달러의 비용과 약 10년의 시간을 소모했으나 로봇과 IT를 결합시키면서 약 2.5분마다 하나의 새로운 균주를 만들어내고 테스트하는 고속 기술을 갖추게 되었고 지난 7년간(2011~2018 년) 15개 제품을 상용화할 수 있었다.
생물학 연구를 로봇이 대신 수행하는 ‘로봇 과학자’ 연구는 2000년대 이전부터 연구되어 왔으나 값비싼 로봇에 비해 일반 연구자들이 수행하는 효율을 크게 개선시키지는 못했다. 반면 표준화된 합성생물학에 기반한 IT와 로봇기술의 결합은 고질적 바이오 기술의 문제점인 낮은 반복성과 재현성을 향상시키고 기존 기술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와 규모의 바이오 기술을 구현했다. 바이오파운드리가 국력이 되려면
미국과 유럽 등 여러 선진국에서는 바이오파운드리로 정의된 이러한 ‘BT+IT+Robot’ 융합기술의 파괴적 영향력과 확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정부 주도로 공공 바이오파운드리의 육성을 추진해 합성생물학 효과가 선도적 민간기업에 의해 독점되지 않도록 하고 국가 전반의 바이오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OECD를 통한 국가간 공조 및 글로벌 바이오파운드리 연합(biofoundries.org) 결성 등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합성생물학 관련 뉴스를 분석해 보면 농업, 의료, 화학, 에너지, 환경, 식량, 생필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파급효과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1월 2023년까지 바이오헬스산업에 약 10조 원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 중 첫 번째 핵심전략은 D.N.A(Data, Network, AI)와 같은 첨단기술을 바이오기술에 융합, 고도화해 사회시스템 전반에 적용하는 것이고 두 번째가 바이오 공통의 핵심 기반 기술을 확보해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4조 달러 가치의 바이오 혁명
최근 매킨지 보고서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20년간 바이오 관련 제품 400여 개가 연간 약 4조 달러 가치의 바이오 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예측했다. 그리고 이러한 바이오 혁명의 동력으로 컴퓨팅과 자동화 그리고 AI가 융합된 바이오 기술이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았다.
합성생물학 기반의 바이오파운드리는 이러한 4조 달러의 바이오 혁명의 중심에 있으며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식량, 생필품, 의약 등 우리 사회 경제의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실제 미국 한림원(National Academies of Science, Engineering and Medicine)은 미국 바이오 경제의 규모가 약 1조 달러에 이르며 바이오 기반 제조를 통해 만들 수 있는 경제적 가치는 미국 전체 GDP의 약 7.4%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로봇과 AI가 인류와 공존하게 되는 흐름은 피할 수 없으며 바이오 영역에서도 표준화에 기반한 자동화 로봇과 AI 결합이 가져오는 혁신은 지금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바이오 기술의 공통영역에 해당하는 인프라를 국내 특성에 맞는 첨단 IT와 융합해 바이오 연구의 속도를 가속화 할 수 있다면 우리가 부족한 부분들을 극복하고 국가 바이오기술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좋은 기회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승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장이다. 서울대 식품공학 학사, KAIST에서 생물공학과 석박사를 취득했다. 2019년 효소공학 및 생물분석, 맞춤형 altodafn 검색 형광 플랫폼 핵심기술 개발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김하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 선임연구원이다. 고려대 학사를 졸업하고 서울대 생물정보학 석사학위 취득 후 영국의 임페리얼대에서 전자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시스템생물학 기반의 인공유전자회로 설계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