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킬러' 박테리오파지, 슈퍼버그 잡는 '게임 체인저' 부상

장내 다제내성균 위치 예측해 공격하는 '신종 파지' 발견
파지의 '위치 표적화' 기제도 확인…미국 미생물학회지 논문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약칭 파지)는 세균을 잡아먹는 바이러스다. 1915년 영국의 세균학자 프레데릭 트워트 박사에 의해 처음 발견된 파지는 그 후 세균을 죽이는 '파지 치료'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 보건 의료계의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한 다제내성균(일명 슈퍼버그)과의 전쟁에서 파지가 일종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학자들은 이번에 세균 감염 위치를 미리 알고 감염 전에 세균을 파괴하는 '신종 파지'를 발견했다. 다제내성균은 여러 종류의 항생제를 동시에 투여해도 전혀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초강력 세균을 말한다.

지금까지 개발된 항생제 중 가장 강력한 게 반코마이신인데 이에 저항하는 황색포도상구균(VRSA)은 이미 25년 전에 일본에서 발견됐다.

이 연구를 수행한 미국 베일러 의대 과학자들은 9일(현지 시각) 미국 미생물 학회 저널 'mBio'에 관련 논문을 제출했다.
파지는 지구 생물권에서 가장 많이 존재하는 개체로 알려졌다.

하나의 세균 개체에는 최소 10종의 파지가 감염해 있을 거로 추정된다.

다제내성균의 차단과 관련해 파지가 관심을 끄는 건, 유익균 외의 특정 세균을 공격하는 데 특화돼 있기 때문이다. 파지는 특히 장(腸)의 점액층처럼 의료적 개입이 어려운 부위에 침입한 다제내성균을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인간의 장에 균총을 형성하는 ExPEC ST131 등의 다제내성균을 주목했다.

특이하게도 이런 세균은 장에 서식하는 동안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장을 벗어나면 뇌, 혈액, 요도, 복막 등에 감염할 뿐 아니라 요도·혈관 유치 카테터(indwelling catheter) 등의 의료 기기도 오염한다.

연구팀은 선행 연구에서 파지가 이런 유형의 세균 감염을 효과적으로 치료한다는 걸 확인했다.

이번 연구의 초점은 파지로 장내 다제내성균을 제거해 다른 기관의 감염을 막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데 맞춰졌다.
연구팀은 파지와 장내 균의 상호 작용을 관찰하다가 파지의 세균 공격을 차단하는 요인이 포유류의 장에 존재한다는 걸 알아냈다.

그것은 장 상피세포와 미생물 막(膜)을 분리하는 뮤신(musin·점액 단백질) 막이었다.

연구팀은 장과 같이 뮤신 수치가 높은 환경에서도 세균을 공격하는 신종 파지를 찾아내 ES17으로 명명했다.

이 파지는 스스로 뮤신에 달라붙어 세균 감염 능력을 키우는 것처럼 보였다.

ES17이 결합하는 뮤신의 헤파란 황산염(heparan sulfate)은 장 상피세포 등 다양한 유형의 세포 표면에서 발견된다.

ES17의 숙주인 ExPEC 균도 같은 헤파란 황산염을 결합 사이트로 이용한다.

그런데 동물 모델에 실험한 결과 오직 ES17 파지만 ExPEC 균을 조준 공격하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능력에 힘입어 ES17은 세균이 모여 있는 장의 깊숙한 곳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이런 근접 조건은 ES17에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장을 벗어나기 전에 ExPEC 균을 공격하고 제거하는 게 쉬워지기 때문이다. 논문의 교신 저자인 앤서니 마레소 분자 바이러스학 부교수는 "신종 파지가 인간의 상피세포와 결합한다는 걸 처음 입증했고, 파지의 이런 특질이 위상 표적화(positional targeting)라는 세균 감염 퇴치 기제를 작동하게 한다는 것도 보여줬다"라면서 "파지가 표적 박테리아의 위치를 예측하는 위상 표적화 기제는, 장차 원하는 부위에만 정확히 약물을 전달하는 치료법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