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유동성→실적 장세…"새 사이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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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들어 폭등세를 지속한 탓인 지 9일(현지시간) 금융시장 전반에 숨고르기가 나타났습니다.뉴욕 증시에서 다우는 0.03%, S&P 500 지수는 0.11% 내렸고 나스닥은 0.14% 상승했습니다. 나스닥은 오전 한때 사상 처음으로 1만4000선을 돌파하며 신기록을 썼습니다.전날 연 1.20%를 돌파했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날 1.14%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ICE 달러인덱스도 전날보다 0.52% 내린 90.46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이날도 7거래일째 오름세를 지속하며 0.7% 오른 배럴당 58.36달러에 마감됐습니다.

올 들어 거의 모든 자산은 폭등세를 보여왔습니다. 원유와 핫코일(철강)은 약 20% 올랐고 옥수수 15%, 백금 11% 상승했습니다. 비트코인은 60%, 이더리움은 135% 폭등했습니다. S&P 500 지수 기준 4% 가량 오른 주식이 가장 뒤처진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뉴욕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은 과거 12개월 실적을 기준으로 31.8배(팩트셋)이고, 향후 12개월 기준으로 해도 22배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는 각각 10년 평균은 18.5배와 17.6배를 크게 넘는 수치입니다. 아무래도 밸류에이션이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시장 일부에서 나타나는 버블의 조짐도 걱정꺼리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게임스톱 사태를 비롯해 비트코인 등 각종 가상화폐 폭등,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붐 등 곳곳에서 투기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날 하이일드 채권의 수익률은 블룸버그 집계 기준 연 3.96%까지 떨어져 사상 처음으로 4% 아래로 하락했습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하이일드(고수익)라고 부르기도 어렵게 됐습니다. ‘정크본드’라고도 불리며 위험은 크되 수익률은 높은 게 하이일드 채권인데, 돈이 지나치게 몰린 탓에 수익률이 연 4%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낮아졌으니까요.
월가 관계자는 "이는 너무 많은 유동성이 풀렸다는 증거일 수 있다"며 "이런 현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유동성을 공급한 미 중앙은행(Fed)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동성 회수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로버트 카플란 댈러스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비은행 금융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과도한 위험 감수와 불균형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며 "문제는 우리가 펜데믹과 싸우는 동안 숲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공격적이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하지만 증시 전반이 강세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은 월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날 JP모간의 다니엘 핀토 투자은행(IB)부문 대표는 CNBC 인터뷰에서 "증시는 올해 내내 점차적으로 오를 것 같다. 상황이 급격히 변하지 않는 한 당분간 조정을 보지는 못할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각종 부양책으로 모든 시장에 극단적인 유동성이 주입됐다. 금리가 제로인 상황에서 돈은 투자처를 찾아다니고 특정 시장에서 약간의 과대평가를 만들게 된다. 이는 성장주뿐만 아니라 가치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제 매우 적은 예외를 제외하고 저렴한 주식은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JP모건의 차기 최고경영자(CEO) 1순위로 꼽히는 핀토는 단기적 위험으로는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를, 중기적 위험 요인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시장이 미국 경제가 올해 연간 5%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변종 바이러스 등으로 경제 재개에 문제가 생긴다면 단기적으로 악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현재 인플레이션은 매우 잘 통제되고 있지만 이번 (Fed의) 실험이 어떻게 될지 결코 알 수 없다. 언젠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그는 "이들 요인으로 인해 약간의 조정이 있을 수 있지만, 추세의 변화는 아닐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날 조정을 경고한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제레드 우다드 전략가도 여전히 나쁜 실물경기, 증시에서의 과열 현상 등을 들어 "1분기에 추가로 5~10% 수준의 조정이 예상된다"면서도 "조정이 오면 매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작년 3월 23일 이후 뉴욕 증시가 바닥을 찍고 11개월 째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투자자들 마음속에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시장 전체의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아졌으니까요.

이에 따라 닷컴버블 붕괴 직전인 1999~2000년 초 상황과 비슷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Fed의 완화적 자세와 제로금리, 가팔라진 채권 수익률 곡선 등을 보면 차이가 크다(모건스탠리)는 분석이 강합니다.

오히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강세장이 시작되던 2009~2010년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당시 S&P 500 지수는 2009년 3월 저점을 찍고 이후 218일 동안 70%나 폭등했습니다.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지요. 이후 작년 초까지 (몇몇 위기는 있었지만) 사상 최장의 호황과 강세장이 이어졌습니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UBS 등 월가 금융사들은 대부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경기 사이클, 그리고 추가적인 증시 강세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작년 초까지 이어져온 최장기 경기 사이클은 지난해 팬데믹으로 갑작스럽게 끝났고, 이제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됐다는 겁니다.

골드만삭스의 피터 오펜하이머 글로벌 전략가는 지난 4일 "우리는 새로운 강세장의 초입 국면에 있다. '희망'의 단계에서 강력한 이익 성장이 기대되는 '성장'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모건스탠리는 작년 말 펴낸 '2021년 투자 전망'에서 "2021년 투자 테마는 '새로운 정상'이다. 경제 회복을 믿고, 경기사이클 초기에 각광받는 자산에 투자하라"고 밝혔습니다.
경기사이클은 크게 회복기→활황기→후퇴기→침체기 4단계로 구분됩니다. 경기 후퇴와 침체는 통상 과잉투자와 과잉생산으로 발생하며 침체를 통해 이런 과잉이 해소되면서 경기는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월가는 팬데믹으로 발생한 갑작스런 침체로 지난 10년간 누적됐던 과잉투자와 생산이 해소됐다고 봅니다. 그리고 백신 보급으로 올 봄~여름께 경제가 본격 재가동되면 기업들의 투자와 생산, 그리고 소비가 증가하면서 활황기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경제가 새로운 사이클로 접어들면 금융시장도 네 단계를 겪으며 움직입니다. 일본의 증시 전문가인 우라가미 구미오(浦上邦雄)는 이를 △금융장세(봄) △실적장세(여름) △역금융장세(가을) △역실적장세(겨울)로 나눴습니다. 금융장세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부양책으로 저금리의 유동성이 공급돼 증시가 실물경기에 비해 과열이다 싶을 정도로 급상승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이후 실적 장세로 넘어가게 됩니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면서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기업들의 이익이 증가하면서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시켜주는 시기입니다.

월가는 지금이 바로 금융장세에서 실적장세로 넘어가는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월가는 작년 하반기부터 기업 실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습니다.

팬데믹이 다시 미 전역을 휩쓴 4분기에 대해선 당초 실적 기대가 크지 않았습니다. 작년 12월31일 기준으로 애널리스트들은 4분기 S&P 500 기업들의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3% 감소할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팩트셋에 따르면 지난 5일까지 S&P 500 기업의 59%가 실적을 공개한 가운데 81%의 기업이 이익에서, 79&는 매출에서도 시장 예상을 상회했습니다. 81%는 팩트셋이 2008년 분기 실적 집계를 시작한 뒤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월가가 예상을 낮춰놓아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기업들의 이익을 보면 전년 동기에 비해 1.7%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는 2019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입니다.

모건스탠리 분석에 따르면 4분기 실적 발표를 한 S&P 500 기업의 중간값을 보면 매출은 4.5%, 영업이익은 10% 가량 늘었습니다.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한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이른바 코로나로 수혜를 받은 기술주들만 잘 나가는 게 아닙니다. 은행과 소비재, 광공업, 헬스케어 등 경기민감 업종의 기업들까지 모두 실적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경제 활동이 아직 재개되지도 않았는데 그렇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기업들이 팬데믹에 적응해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디지털 투자를 늘려 새로운 비대면 흐름에 적응한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Fed와 미 행정부가 강력한 부양책을 펼친 덕에 소매판매 등 소비가 활발한 것도 기업들에 큰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습니다.

2분기부터는 기업 실적이 본격 개선될 것으로 월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S&P 500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이 31% 급등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또 내년에는 17%, 2023년에는 6%, 2024년에는 5% 증가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실적 장세가 3~4년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이런 실적 증가세가 최소 24~48개월 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UBS의 마크 헤펠 수석전략가는 "4분기 이익이 크게 성장했다는 점을 향후 지속적 실적 상승의 징조로 보고 있다"며 "올해 미국은 작년 대비 6.1%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증시에서도 강세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월가 금융사들이 금융, 산업, 소재 등 경기민감주와 소형주를 추천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들이 통상 경기가 살아날 때 가장 이익 증가폭이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관론도 있습니다. 월가의 유명한 회의론자이며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피터 시프는 "현재 스태그플레이션의 냄새가 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너무 많은 돈을 풀면서 기업들은 실업급여와 경쟁해야하기 때문에 임금을 올려야하고 이는 생산성 저하로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 미 노동부가 지난 4일 발표한 지난해 4분기 비농업 부문 노동 생산성은 전분기 대비 연율 4.8%(계절 조정치) 떨어졌습니다. 노동비용이 전분기 대비 6.8% 상승한 탓입니다. 이는 인플레 압력을 높이고, 기업 이익에는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됩니다.
시프는 "미국은 부채가 너무 많고 모두가 큰 레버리지를 쓰고 있으며 이로 인해 증시에 엄청난 거품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선 인플레이션이 급등해도 Fed는 기준금리를 올릴 수 없다"며 불경기 속에 인플레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점쳤습니다. 그는 "배럴당 60달러 위로 치솟은 유가(브렌트유)를 예로 들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없다는 이들은 유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봐야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