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선 살지 말란 얘기냐"…'공급 폭탄' 2·4 대책 따져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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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83만 가구 공급…역대 최대 공급 대책이라는데
정부 의지대로 실현 가능한 물량은 30만에 그쳐
나머지는 미지수…단기 공급물량은 거의 없어
정부의 ‘2·4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 헛점이 드러나고 있다. 대규모 공급을 예고했지만, 단기간에 나올 공급이 없어서다. 땅이나 사업권을 내놓는 민간에서 각종 혜택을 준다고는 했지만, 사실상 매매를 묶어버리는 대책이다보니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공이 시행하는 정비사업을 권유한다지만, 이에 따른 이주수요를 위한 전월세 대책은 전무하다. 또다른 '희망고문'으로 전월세 수요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책 따져보니…서울서 공공택지 공급량은 '0'
정부는 지난 4일 2025년까지 전국에 83만가구를 공급하는 내용의 ‘공공 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 공급 획기적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이라고 예고한 대로 현 정부 들어 최대 규모의 공급 방안이다. 서울에 분당신도시 3개 규모,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아파트 수와 비슷한 32만3000가구를 짓고, 경기·인천(29만3000가구) 물량까지 합쳐 수도권에만 61만6000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정부는 이번 대책을 내놓으면서 83만가구에 달하는 주택 공급 물량을 공언하며 '공급 쇼크' 수준이라는 자체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정말 83만가구 공급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비사업 등에 민간의 자율적인 협력이 필요한데 지금처럼 각종 규제로 묶여있는 상황에서 참여가 얼마나 늘지는 미지수”라며 “시장에선 많아봐야 기존 계획의 20~30% 수준에 그치지 않을까 예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단기간에 물량은 공급절벽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가 밝힌 수개월 내 입주가 가능한 단기 공급 물량은 올해 2000가구에 불과하다. 내년에도 3000가구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은 공급량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올해 지역별 공급 물량은 서울 900가구, 수도권 700가구 등이며, 내년에도 서울 1300가구, 수도권 1000가구에 그친다.
"당분간 서민들 살 집 없어…전세난만 커질 것"
정부 주도형 정비사업 등에 민간이 참여할 경우 이점이 있을까. 공공주도 사업에 참여하는 토지주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 등이 면제된다. 하지만 용적률 인상, 재초환 면제 등으로 발생하는 이익 가운데 최대 30%만 토지 소유주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공공이 가져간다.최근 주택시장은 짓기만 하면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지주를 유인할 인센티브로 작용할지 미지수다. 주민 동의율을 3분의 2로 낮췄다지만 재산권이 달린 문제여서 뜻을 모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운좋게 대규모로 정비사업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또 있다. 이번 대책의 공급 물량 대부분은 정비사업을 통해 진행된다는 점이다. 기존 주택을 허물고 주택 수를 늘려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만큼의 새집이 지어질 수 있지만 허물어지는 주택도 상당수다. 이들의 이주 수요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무주택 실수요자 서민들이 아파트뿐만 아니라 빌라조차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거주도, 투자 이익도 누릴 수 없으니 매매가 이뤄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보통 빌라 구매 목적은 정비사업에 의한 매매차익과 실거주 목적 등 두 가지"라며 "지금으로서는 어느 부분도 충족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정책의 보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세난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밝힌 공급대책의 윤곽이 전반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에서 매매할 집마저 사라지면서 수요자들이 상대적으로 계획이 확실한 청약에 몰릴 수 있다. 청약 대기수요로 인한 전세수요가 큰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시장에선 전셋값이 잡히지 않는 중이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넷째 주 이후 15주 연속 0.10% 이상을 기록하며 여전히 높은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