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북쉘프-노벨평화상을 받은 무기 밀매상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시몬 페레스 著)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인 1976년 6월 27일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공항을 떠나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으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139호 항공기는 중간 경유지인 아테네 공항을 떠난 직후 테러범들에게 납치당한다.

테러범들의 목적지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이었다. 이스라엘과는 약 4000㎞나 떨어진 곳이다. 당시 우간다를 다스리던 독재자 이디 아민이 테러범들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납치된 승객들은 테러범뿐 아니라 중무장한 우간다군의 감시에 놓이게 됐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흐른 1976년 7월 4일, 네 대의 군용 수송기가 새벽녘의 어둠을 가르며 엔테베 공항에 착륙한다. 수송기에서 쏟아져 나온 이스라엘 특수부대원들은 격렬한 총격전 끝에 테러리스트들과 우간다군을 제압하고 105명의 인질을 구출한 채 본국으로 무사히 귀환한다. 첫 번째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고 나서 마지막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단 90분에 불과했다.

4000㎞면 서울에서 태국 방콕까지의 거리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적성 국가에 특수부대를 보내 인질들을 모두 구출해낸 사례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엔테베 작전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인질 구출 작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당시 국방장관으로서 엔테베 작전을 지휘했던 이는 시몬 페레스. 훗날 이스라엘의 총리와 대통령에 오른는 인물로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폴란드 비쉬네바 출신으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가족과 함께 영국령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던 그는 자신의 일생을 신생 독립국가 이스라엘의 독립과 건국, 발전을 위해 바쳤다. 20대 때는 미국을 오가며 신생 독립국의 군대를 무장시킬 무기를 밀수하는 무기 밀매상으로 일했다. 총리가 된 후에는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경제발전의 발판을 만들었고,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창업 국가’ 이스라엘의 초석을 쌓았다. 1994년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협정인 오슬로 협정을 맺은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젊은 시절부터 숱한 위기를 이겨내 온 그였지만 그런 그조차도 엔테베 작전을 앞두고선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작은 실수 하나가 작전에 투입된 병력들은 물론 인질들의 목숨조차 위태롭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완벽해야만 하는 작전이었다.

그렇다면 그와 이스라엘 정부, 군 지휘부가 엔테베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의 자서전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한 내용을 읽어보면 큰 위기가 닥쳤을 때일수록 과거의 경험에 얽매이지 않은 창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시몬 페레스는 군사 작전을 구상하기 위해 여러 장성과 장교들을 모아 ‘판타지 위원회’라고 불리는 팀을 만들었다. ‘상상’과 ‘공상’을 뜻하는 영어 단어 ‘판타지’(Fantasy)라는 말대로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택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판타지 위원회는 실현 가능 여부는 제쳐두고 먼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검토했다. 낙하산 부대를 보내서 인질들을 구출하는 작전, 스피드 보트를 탄 병력이 빅토리아 호수를 가로질러 공항으로 들어가는 작전, 대규모 병력을 보내 엔테베 공항 인근의 도시와 항구를 장악하는 작전 등 온갖 작전이 논의됐다.

이렇게 장군과 장교들이 모여 계급장을 떼고 서로 상상 가능한 온갖 작전들을 놓고 토론하면서 계획은 점점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듬어졌다. 낙하산 부대를 공항에 침투시키자는 아이디어는 병력을 실은 수송기를 공항에 착륙시키자는 계획으로 발전했다. 우간다군도 설마 인질들을 구출하러 온 이스라엘군 수송기가 떡하니 공항 활주로에 내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테니 초반에 의심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인질들을 구출한 뒤 돌아가는 데도 유리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작전 계획은 점점 정교해졌고 모두 4대의 수송기를 보내고, 장갑차를 싣고 가서 우간다군의 중화기와 맞서는 최종 계획이 수립됐다.

그리고 이처럼 기존의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 전혀 다른 새로운 접근법을 취한 덕분에 엔테베 작전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인질 구출작전으로 불릴 수 있게 됐다.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는 시몬 페레스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세상을 뜨기 얼마 전까지의 삶을 세밀하게 담아낸 자서전이다. 그에게 이 책을 완성하는 건 인생 최후의 도전이었다. 그는 이 책의 원고를 마무리하고 1주일 후인 2016년 9월 28일에 세상을 떠났다.

다음 네 가지 원칙은 그가 책을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책임진 젊은 세대들에게 당부한 원칙들이다. 그 역시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이자 그의 정치적 멘토인 다비드 벤구리온에게 배울 수 있었던 교훈이었다.

첫째, 미래에 대한 비전은 현재의 계획이 투영되어야 한다.

둘째, 사람은 믿음의 힘으로 그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다.

셋째, 내일의 기회를 위해 오늘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은 없다.

넷째, 산통 없이는 출산할 수 없는 것처럼, 성공하려면 실패의 아픔도 감수해야 한다.

그는 책에서 자신이 낙관주의자임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이유를 역사에서 찾는다. 사람들의 삶이 결국 조금씩 나아져온 역사를 보면 낙관주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야말로 비관적인 세계관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유제”라는 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