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김래아·르노 리브…'기업 얼굴' 꿰찬 가상인간들

가상인간, 산업 전면에 등장
LG전자 "김래아 아티스트로 육성"
KFC는 창업주 재창조해 마케팅
비용 싸고 스캔들 없는 게 장점

'아담' 시절과 차원 다르다
AI 입혀 실제 사람 말·행동 학습
가상세계 익숙한 MZ세대 열광
사진=한경DB
지난달 온라인으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1’의 주요 장면 중 하나는 가상인간의 등장이었다. LG전자의 프레스 콘퍼런스에는 가상인간 ‘김래아’가 나와 유창한 영어로 쇼 도입부를 진행했다. 스스로 학습해 내는 목소리였다. 쇼의 흥미를 끌기 위한 이벤트라는 시각이 많았지만 LG전자는 앞으로 김래아를 마케팅 전면에 앞세울 방침이다. 음악앨범 발매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마케팅의 중심축으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현실로 들어온 가상인간

10일 가상인간 정보 사이트 ‘버추얼휴먼스’에 따르면 올초 김래아를 포함해 새로운 가상인간 22명이 등장했으며, 전 세계에 144명의 가상인간이 활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서부터 ‘시리’ 등 인공지능(AI) 비서와 대화하며 자란 젊은 층이 주력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이들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가상인간 개발에 나선 것이다.‘미래서 온 아이’라는 뜻을 지닌 김래아는 23세 음악가로 자신을 소개한다. AI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가상의 존재지만 인간과 상호작용한다. 인스타그램도 시작했고, 트위터 팔로어도 5000명이 넘는다.
가상인간 홍보대사가 활동하는 기업은 LG전자뿐 아니다. 미국의 KFC는 지난해 창업주 커넬 샌더스를 가상인간으로 다시 창조했다. 푸근하고 정감 있는 브랜드 이미지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였다. 배 나온 할아버지였던 샌더스는 ‘식스팩’ 복근을 갖춘 젊은이로 변신해 화보를 찍고 이를 SNS에 올렸다. 르노 푸마 발망 육스 등 스포츠·패션 기업도 저마다 가상인간 홍보대사를 두고 있다.

○‘인플루언서’로 존재감도 커져

가상인간 도입이 가장 활발한 분야 중 하나는 인플루언서 시장이다. SNS를 통해 기업이나 제품을 홍보하는 입소문 마케팅(WOM)에 주로 활용된다. 현재 가장 유명한 가상인간 인플루언서는 릴 미켈라. 500만 명의 팬덤을 보유한 유명 인사다. 영국의 온라인 쇼핑몰 ‘온바이’는 릴 미켈라의 지난해 수익이 1170만달러(약 13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텔리전스 조사에 따르면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은 2022년께 15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관련 창업도 활발하다. 일본의 스타트업 Iww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코랄캐피털로부터 시드머니 1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이 회사가 개발한 가상인간 ‘이마’는 최근 이케아 광고에 출연하는 등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또 다른 가상인간 개발사 슈퍼플라스틱은 지난해 1600만달러(약 177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버추얼휴먼스 창업자인 크리스토퍼 트래버스는 “가상인간은 실제 사람보다 인건비도 싸고, 동시에 여러 장소에 등장할 수 있으며 절대 늙거나 죽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걱정도 없다. SM은 최근 데뷔한 아이돌 걸그룹 ‘에스파’ 멤버인 아바타 4명을 개발하면서 열애설, 사건·사고 등 리스크가 없다는 게 이점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버스 익숙한 MZ세대

가상인간이 급증한 이유로 기술 발전으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벗어나게 된 것이 꼽힌다. 이는 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으면 수용자가 불쾌감을 느낀다는 로봇 이론이다.과거 사이버가수 아담 등은 3차원(3D) 애니메이션에 사람 목소리를 입힌 것에 불과했지만 최근 등장한 가상인간들은 사물인터넷(IoT)과 AI 기술을 적용해 실제 사람의 모습과 목소리 등을 배운다. LG전자도 김래아를 개발할 때 모션캡처 작업을 통해 7만여 건에 달하는 실제 배우의 표정과 움직임을 추출했다. 이를 토대로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3D 이미지를 학습시켰다. 목소리와 언어 역시 4개월여간 자연어 정보를 수집한 뒤 학습 과정을 거쳤다.

MZ세대가 가상세계를 현실세계 못지않은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도 가상인간 도입을 앞당긴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10월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며 “앞으로 20년은 현실과 공상과학영화(SF)가 다르지 않다는 걸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타버스란 사용자의 상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증강현실, 가상현실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3D 게임 마인크래프트·로블록스, 아바타 SNS인 ‘제페토’ 등이 대표적인 메타버스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기업이 자사의 가상인간 홍보대사를 두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며 “미국 초등학생의 70%가 로블록스를 하고 있는데 이들이 소비자층으로 성장하면 메타버스 경제가 주요 흐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