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애플의 심기를 건드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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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자본시장을 흔든 이슈 중 하나였던 애플과 현대차그룹간 '애플카' 생산 해프닝이 현대차 측의 부인으로 소강 상태에 돌입했다. 미국 현지 언론을 중심으로 현대차 측의 비밀유지조항(NDA) 위반을 애플이 문제삼았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즉 비밀주의 위반을 이유로 애플이 현대차 측에 일방적으로 협상 결렬을 통보하는 등 '갑질'을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진위를 파악할 순 없지만 투자은행(IB), 회계법인, 로펌, 컨설팅사 등 글로벌 M&A 자문업계에서도 애플은 보안 측면에서 가장 까다로운 고객으로 꼽힌다. 한 자문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테크기업, 이른바 F·A·A·G(페이스북·아마존·애플·구글)이 모두 강력한 내부통제(컴플라이언스) 기준을 갖고 있지만 그 중에서 애플이 가장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다"라며 "글로벌 사무소에선 해당 부서 사람들이 외부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숫자는 물론이고 사석에서 '애플의 미래는 어떨까' 식의 언급만 하더라도 곧장 경고가 날아온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애플과 국내 자본시장간 접점이 크지 않은 만큼 애플의 정보 통제와 단가 인하 요구 등 '갑질'을 가장 직접적으로 직면하는 곳은 반도체·디스플레이·카메라모듈 등을 공급하는 핵심부품사들이다. 삼성·LG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국내 기업들도 "북미 최대 고객사" 등으로 애플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주요 부품 업체들 사이에서 애플만의 특이한 공급망 관리로 가장 널리 회자되는 조건은 최고 우대조항('Most Favored Condition')이다. 주요 부품사나 협력사가 똑같은 제품을 다른 고객에 납품하게 될 때 애플보다 싸게 공급한다면, 애플도 해당 가격에 납품해야 하는 조건이다. 예를 들어 삼성디스플레이가 애플에 1장당 10만원 수준에 OLED패널을 납품하면서, 삼성전자 갤럭시S용 디스플레이로는 8만원에 공급한다면 애플의 공급가격도 즉각 8만원으로 맞춰야 한다는 조항이다.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강대국의 '최혜국 조항' 요구와 유사한 조건이다.
협력사들에 대한 가격 통제 측면에서도 압도적 역량을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들은 통상적으로 한 해 이익을 추정하면서 애플향(向) 물량은 평균 단가 대비 약 15%를 할인해 추정하고 있다. 매년 할인 폭엔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주요 모바일 공급사 중 가장 낮은 가격으로 공급받는 '특혜'는 놓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부터 D램 공급 부족 현상이 일부 나타나면서 애플로 납품하는 가격도 평균 판매가 대비 5% 정도로 할인율이 낮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고스란히 반도체 업체들의 이익 개선에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술 제약상 특정 업체로부터 핵심 부품을 독점 공급받아야 할 상황에선 통제 수단이 더욱 까다로워 진다. 현재 LG이노텍에서 독점 공급받는 카메라 모듈과 삼성디스플레이가 독점 양산하는 모바일 OLED 디스플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부품업계에선 LG이노텍이 조립·생산하는 카메라 모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렌즈, 이미지센서, AF액츄에이터(AF Actuator) 등의 공급가격을 애플이 직접 1·2차 협력사들과 협상해 사전 계약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즉 최종 납품처는 LG이노텍이지만, 이 마저도 일종의 '공임비' 수준으로 마진을 책정해 부품가를 산정한다는 해석이다.
한 전자업계 전문가는 "예를 들어 용산 전자상가에서 컴퓨터를 조립하면서 부품들은 고객이 따로따로 이미 다 구해온 후 조립만 해달라며 조립비만 지불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LG이노텍이 2017년 이후 투자자대상 공개 컨퍼런스콜을 중단한 점을 두고도 애플 측의 정보통제 요청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같은 애플의 '수퍼갑' 지위의 원동력은 무엇보다 압도적인 생산 물량에 있다. 2015~2016년 무렵엔 아이폰6의 판매 부진으로 물량조차 보존해주지 못하면서 애플향 물량을 저가에 수주했던 일본 소재·부품 기업들이 연쇄 도산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품사들도 학습효과를 쌓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애플이 아이폰 판매 부진으로 약속했던 수준의 디스플레이 패널을 사가지 않자, 곧장 협상을 통해 수천억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진위를 파악할 순 없지만 투자은행(IB), 회계법인, 로펌, 컨설팅사 등 글로벌 M&A 자문업계에서도 애플은 보안 측면에서 가장 까다로운 고객으로 꼽힌다. 한 자문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테크기업, 이른바 F·A·A·G(페이스북·아마존·애플·구글)이 모두 강력한 내부통제(컴플라이언스) 기준을 갖고 있지만 그 중에서 애플이 가장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다"라며 "글로벌 사무소에선 해당 부서 사람들이 외부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숫자는 물론이고 사석에서 '애플의 미래는 어떨까' 식의 언급만 하더라도 곧장 경고가 날아온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애플과 국내 자본시장간 접점이 크지 않은 만큼 애플의 정보 통제와 단가 인하 요구 등 '갑질'을 가장 직접적으로 직면하는 곳은 반도체·디스플레이·카메라모듈 등을 공급하는 핵심부품사들이다. 삼성·LG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국내 기업들도 "북미 최대 고객사" 등으로 애플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주요 부품 업체들 사이에서 애플만의 특이한 공급망 관리로 가장 널리 회자되는 조건은 최고 우대조항('Most Favored Condition')이다. 주요 부품사나 협력사가 똑같은 제품을 다른 고객에 납품하게 될 때 애플보다 싸게 공급한다면, 애플도 해당 가격에 납품해야 하는 조건이다. 예를 들어 삼성디스플레이가 애플에 1장당 10만원 수준에 OLED패널을 납품하면서, 삼성전자 갤럭시S용 디스플레이로는 8만원에 공급한다면 애플의 공급가격도 즉각 8만원으로 맞춰야 한다는 조항이다.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강대국의 '최혜국 조항' 요구와 유사한 조건이다.
협력사들에 대한 가격 통제 측면에서도 압도적 역량을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들은 통상적으로 한 해 이익을 추정하면서 애플향(向) 물량은 평균 단가 대비 약 15%를 할인해 추정하고 있다. 매년 할인 폭엔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주요 모바일 공급사 중 가장 낮은 가격으로 공급받는 '특혜'는 놓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부터 D램 공급 부족 현상이 일부 나타나면서 애플로 납품하는 가격도 평균 판매가 대비 5% 정도로 할인율이 낮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고스란히 반도체 업체들의 이익 개선에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술 제약상 특정 업체로부터 핵심 부품을 독점 공급받아야 할 상황에선 통제 수단이 더욱 까다로워 진다. 현재 LG이노텍에서 독점 공급받는 카메라 모듈과 삼성디스플레이가 독점 양산하는 모바일 OLED 디스플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부품업계에선 LG이노텍이 조립·생산하는 카메라 모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렌즈, 이미지센서, AF액츄에이터(AF Actuator) 등의 공급가격을 애플이 직접 1·2차 협력사들과 협상해 사전 계약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즉 최종 납품처는 LG이노텍이지만, 이 마저도 일종의 '공임비' 수준으로 마진을 책정해 부품가를 산정한다는 해석이다.
한 전자업계 전문가는 "예를 들어 용산 전자상가에서 컴퓨터를 조립하면서 부품들은 고객이 따로따로 이미 다 구해온 후 조립만 해달라며 조립비만 지불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LG이노텍이 2017년 이후 투자자대상 공개 컨퍼런스콜을 중단한 점을 두고도 애플 측의 정보통제 요청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같은 애플의 '수퍼갑' 지위의 원동력은 무엇보다 압도적인 생산 물량에 있다. 2015~2016년 무렵엔 아이폰6의 판매 부진으로 물량조차 보존해주지 못하면서 애플향 물량을 저가에 수주했던 일본 소재·부품 기업들이 연쇄 도산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품사들도 학습효과를 쌓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애플이 아이폰 판매 부진으로 약속했던 수준의 디스플레이 패널을 사가지 않자, 곧장 협상을 통해 수천억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