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비밀' 다룬 드라마 볼 때 엄마·아빠 마음 미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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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입양가족연대 국장드라마의 소재가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단골 인기 소재는 ‘출생의 비밀’이다. ‘찬밥’인 양아들이 알고 보니 친아들로 밝혀지고 그제야 ‘가족’으로 인정받는다는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모두가 재밌다고 입을 모으는 드라마에 어떤 가족들은 남몰래 속을 끓인다. 입양 가정이 그렇다. 저조한 입양률의 배경에는 피로 이어져야 진정한 가족이라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혈연주의가 있다. 김지영 전국입양가족연대 국장은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출산 가정이나 입양 가정이나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야 건강한 입양 문화가 사회에 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입양 부모, 거룩한 성자 아냐
사회에서 아이 데려왔을 뿐
일반 가정처럼 부딪치며 살아
친자·양자 모두 같은 자식
왜 다른 눈으로 바라보나
○“다 같은 자식인데 다르게 보는 게 문제”
사춘기 중학생인 딸과 함께 놀기도 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한다. 한 아이를 키워봤으니 둘째 키우기는 쉬울 줄 알았다는 김 국장도 입양 부모다. 2007년에 둘째 딸을 입양했다. 10년 넘게 양자녀를 키우고 입양 문제를 다룬 그는 한국 사회의 입양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고 진단했다.김 국장은 “입양 부모는 거룩한 성자도, 예비 아동학대자도 아닌 출산한 부모나 다름없는 평범한 부모”라며 “단지 아이를 자궁이 아니라 사회에서 데려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령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입양한 자식한테 혼을 낼 수 있느냐’고 하는데,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친자와 양자에 대한 차별”이라며 “입양 가정도 비입양 가정처럼 ‘공부하라’고 잔소리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함께 지낸다”고 덧붙였다. 입양을 지나치게 거룩한 일로 묘사하고 부모가 마냥 선할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입양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미디어가 계속 재생산하고 있다는 게 입양 가정들의 비판이다. 김 국장은 “아직도 미디어에서는 양자가 차별받는 ‘콩쥐팥쥐’식 이야기 같은 비극적 스토리가 넘쳐나고 있다”며 “보건복지부 등 정부담당 부처에서 입양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공익광고 같은 홍보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한국 사회 특유의 혈연주의 문화에 기반한 입양 차별은 실제로 입양 문화에 해악을 끼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우리나라 입양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혈연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관이 지배적으로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높고, 양육 및 경제 등 입양 부담으로 인해 입양문화가 정착되지 못한다”며 “유아교육기관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 단계별로 각 교육기관에서 입양 관련 교육 및 홍보활동 체계화로 입양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인이 사건’은 입양 아닌 아동학대 문제”
‘정인이 사건’으로 입양 부모는 잠재적 아동학대자라는 막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실제로 입양가정에 학대가 발생한 경우는 극소수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 3만45건 중 입양 가정에 학대가 발생한 경우는 0.3%(84건)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친부모나 한부모, 미혼부·모, 재혼, 동거 가정 등 친생부모가 있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의 화살이 애꿎은 입양 가정을 향한 것이다.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인이 사건과 관련한 재발 방지 대책으로 ‘입양 취소’를 언급하면서 편견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입양 가정 사이에선 정인이 사건으로 입양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김 국장은 “사건의 본질은 공적 시스템에 속하는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며 “정인이 사건은 입양의 문제가 아니라 아동 학대와 보호 전반의 문제로 봐야 하는데 정부가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