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죽이다: 네슬레 퓨어 라이프의 전략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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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신간 서적 저자 기고■ 「마케터는 잘못이 없다」저자, 이동훈, 김세환지금까지 마케팅은 소비자의 심리 장벽을 허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따른 전략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가격이 약점이면, 디자인을 강조해 구매를 자극한다. 품질이 뛰어나지 않으면, 가성비를 앞세운다. 이를 통해 어떻게든 소비자가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한다.그러나 최근 들어 기업이 커뮤니케이션을 스스로 줄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소비자의 심리 장벽을 허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접근을 까다롭게 했다. 사실상 제품과 소비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죽였다는 표현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히려 이 전략이 소비자에게 차별화되는 경험을 제공하고 고객으로부터 충성심을 끌어냈다.
소비자의 심리 장벽을 세우는 방식의 마케팅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주류가 아니었다. 그러나 달라진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변화를 이끌었다. 인터넷과 디지털 모바일의 등장으로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양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은 말 그대로 빅뱅 수준으로 폭발했다. 2017년 메신저 서비스 왓츠앱(WhatsApp)에서 하루 550억 건, 텔레그램(Telegram)에서 120억 건의 메시지가 오갔다. 카카오톡의 일일 메시지 전송량은 2012년 10억 건에서 2019년 110억 건으로 열 배 이상 증가했다.커뮤니케이션 빅뱅이 진행되면서 기존 마케팅은 해변에 한 줌 모래를 뿌리는 것처럼 그 효과가 하락했다. 신차가 출시되기 전 파워블로거는 예상 디자인을 블로그에 올린다. 새로운 스마트폰이 등장하면 기업이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하기도 전에 수많은 유저들이 개봉기 또는 이용 후기를 올리며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은 소비자의 심리 장벽을 허물기 위해 수백억 원 비용을 쏟아부어도 원하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워졌다.
물론 커뮤니케이션이 넘쳐나는 시대에 기업이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죽이는 방식의 전략을 취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미네소타대학교의 주이(Zhu Yi) 교수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앤서니 듀크(Anthony Dukes) 교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들은 새로운 제품을 론칭하면서, 차별화 대신 경쟁자와 공통점을 강조한 네슬레(Nestlé)의 사례를 분석했다. 네슬레는 새로운 생수 브랜드 퓨어 라이프(Pure Life)를 출시했다. 퓨어 라이프가 출시한 시점에 생수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는 다논(Danone)의 에비앙(Evian)이었다. 에비앙은 알프스의 깨끗한 이미지를 제품에 연결하며 청정함을 전면에 내세웠다. 따라서 다른 기업은 청정함을 제외한 다른 속성을 강조하는 차별화가 필요했다.하지만 네슬레는 에비앙과 동일하게 청정함을 강조했다. 후발 주자가 차별화 없이 시장에 진입하려는 마케팅 전략은 이례적이면서 위험해 보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네슬레는 생수 시장에서 30%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네슬레는 마케팅 교과서가 중요시하는 차별화에 역행했지만 성공했다. 그 이유를, 두 교수는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소비자의 관심이 쉽게 분산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엄청난 마케팅이 오히려 소비자 관심을 떨어뜨리고 차별성을 약화하는 희석효과(dilution effect)를 발생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네슬레 사례를 분석하기 위해 여러 마케팅 담당자를 심층 인터뷰했다. 마케팅 담당자는 마케팅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경쟁사와 같은 특성을 강조하는 전략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 있다고 봤다.
네슬레가 마케팅 차별화 없이도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물’이 가진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인 깨끗함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생수의 핵심은 깨끗함이다. 차별화를 이유로 물의 오리지널리티인 깨끗함을 외면하는 마케팅은 시작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오리지널리티를 담으면 굳이 차별화하지 않아도 시장에서 저절로 차별화된다. 본질에 집중하는 커뮤니케이션이 곧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