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 마시다" 논란 1년만에 속도내는 한·미 방위비 협상[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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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이 큰 논란을 일으킵니다. ‘김칫국 마시다’라는 속담의 뜻을 영어로 설명한 이 사진은 공교롭게도 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을 두고 ‘잠정 타결’ 됐다는 한국 정부 입장에 대해 미국이 정면 반박한 날 올라왔습니다. 당시 주한미군 측은 “사령관이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익힌 표현을 올린 것일 뿐이라 한·미 현안과 연결지으면 곤란하다”고 말했지만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추측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 미국 국무부가 “협상은 아직 안 끝났다”며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놓으며 분위기는 급반전됩니다. 며칠 뒤 로이터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전년대비 13% 인상’ 안을 최종 거부했다고 보도합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측 제안 거부 결정은 지난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의 협의를 거쳐 이뤄진 것이고 전·현직 당국자들이 사석에서도 수일 내에 새로운 합의가 이뤄질 희망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는 내용까지 전합니다. 결국 협상은 해를 넘긴 지금까지 타결되지 못했습니다.
바이든 "트럼프 500% 인상안은 韓 갈취"
CNN이 보도한 잠정 합의는 지난 5일 회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양측은 11차 SMA 체결을 위한 8차 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했습니다. 이 회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양국 간 첫 SMA 공식 회의로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첫 통화에서 양국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지 하루 만에 열렸습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양측이 그 동안 계속된 이견 해소 및 상호 수용 가능한 합의 도출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했다”며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타결함으로써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번영의 핵심축(linchpin)으로서 한미동맹과 연합방위태세 상화에 기여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도 지난 4일 국회 답변에서 “SM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시기가 올 것”이라며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도) SMA와 관련해 양측 대표 간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고, 조속히 타결하자는 의지가 확인됐다”고 소개했죠.
'4% 인상'은 버리고 역대 최대 13% 인상?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타결 임박’ 이야기가 나와 한국이 반색하고 있는 ‘13% 인상안’도 역대 최대폭의 인상이라는 점입니다. 한국이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을 처음 ‘분담’하기 시작한 1991년 이래 모두 10차례의 SMA가 체결되었습니다. 분담금 인상률이 가장 높았던 것은 1993년이었습니다. 당시 29.8%가 올랐지만 전년도 분담금이 1.8억달러(약 2000억원)로 현재 분담금의 5분의1도 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분담금 액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은 트럼프 행정부 당시인 2019년도 10차 SMA였습니다. 총 787억 원으로 전년 분담금의 8.2%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이때 한국의 분담금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만약 올해 13% 인상된다면 최고 인상 기록은 깨지게 됩니다.
‘4%’는 2014~2018년 적용됐던 9차 SMA 합의에 나왔던 수치입니다. 이 협정에서 양국은 첫해 9200억원 분담금을 시작으로 매년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인상하되 과도한 인상을 막기 위해 최대 4%를 넘지 않도록 합의했습니다. 협상 초기 정부가 4% 인상안을 냈다는 설도 이 기준에 기초해 4% 인상안을 제시했다는 분석에 기초합니다. 물론 당시 한국 측이 처음 제시한 인상안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동결이나 소폭 인상안을 고수했다고 밝힌 정부가 협상 초기부터 ‘13% 인상’을 내밀었을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다시 말해 만일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상이 한국이 ‘최대치’로 제시한 13% 인상안에서 타결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벼랑끝 전술’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게 됩니다.동맹을 중시한다는 바이든 정부는 그동안의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정책을 ‘갈취’라고까지 표현하며 비판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양보하면서 오히려 바이든 행정부가 안보협의체 ‘쿼드(Quad)’ 등 반중(反中) 전선에 한국 참여를 약속받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임기 만료 전 남북한 관계 진전의 성과를 내기 위해 미국의 협조가 절실한 문재인 정부에 비해 바이든 행정부가 양보해야할 ‘유인’은 적다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한·미 관계는 물론 남북 관계와 한·중 관계까지 얽혀있는 이 고차방정식을 풀어내는 데에서 우리 외교의 역량이 드러날 전망입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