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의 뚜껑도 열리기 전에 야권에서 정계개편론이 분출하고 있다. 재보선 주자들을 중심으로 '야권 통합에 의한 대선 승리'라는 시나리오의 초안을 잡아가는 모양새다.
서울시장 탈환을 위해 야권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다면,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정치질서의 재편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그 바탕에 깔려있다.
국민의힘 오세훈 경선후보는 14일 통화에서 "야권 단일화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형태로 마무리되면 범우파 연합을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 질서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 후보는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서울시를 공동 운영하기로 합의하는 형태의 단일화"를 거론했다.
여론조사 경선에 그치지 말고 '연립 정부'를 추진해 시너지를 내자는 제안이었다.
앞서 안 후보와 무소속 금태섭 후보, 국민의힘 나경원 후보가 이미 차례로 정계개편의 가능성 내지 당위성을 주장한 바 있다. 이들이 정계개편을 앞다퉈 거론하는 이면에는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저력에 대한 의구심이 엿보인다.
기존 '간판'으로는 대선에서 또다시 참패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읽힌다.
특히 국민의힘 헤게모니를 깨려는 제3지대뿐 아니라 국민의힘 본진에서도 비슷한 '자성'이 흘러나온 점이 눈길을 끈다. 나 후보는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안 후보뿐 아니라 금 후보, 더 넓게는 조정훈 후보까지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진중권 전 교수와 서민 교수 등도 중요한 역할을 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경선 초반 "패션 우파"를 비판하다 "합리적 진보까지 모으자"고 태세를 전환한 나 후보는 사실상 반문(반문재인) 연대나 다름 없는 '자유주의 상식 연합'의 출범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공교롭게도 야권 주자들이 가상 양자대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게 추격을 허용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시점과 맞물린다.
야권 단일후보를 내세워도 낙승을 장담하기 어려워진 만큼 '통합'을 강조할 수밖에 없게 됐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계개편 구상이 동시다발로 분출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재보선 직후 이어질 당권 경쟁과 무관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당 안팎의 물밑 알력이 후보들의 공개 발언에 투영됐다고 보는 시각이다.
특히 김종인 체제를 탐탁지 않게 여겨온 세력들이 대선의 전열 정비를 명목으로 김 위원장 임기가 만료된 후 '새 판'을 모색하려는 뜻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옛 친이계 좌장 격인 이재오 상임고문은 최근 라디오에서 "국민의힘이 이기면 더 큰 야당으로 통합해야 하고, 지면 당을 해체해야 한다"고 운을 띄웠다.
당 밖에서 권토중래 기회를 노리는 무소속 홍준표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차기 대선판은 민주당 판"이라며 "반문재인 진영이 모두 하나 될 때 야당 대선판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야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금 나오는 정계개편론은 설익은 수준"이라며 "단일화와 선거 결과에 따라 내부 알력이 드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