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사·변호사가 직장인보다 대출이자 더 많이 낸다

"금융 상식이 흔들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중은행의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신용대출 금리가 일반 직장인 대출 금리 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고신용자 대출 억제 정책이 이어지면서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신용도에 따라 대출 금리가 차등 적용되는 ‘금융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사·변호사가 이자 더 많이 내

9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의 전문직(의사, 변호사 등) 신용 대출 최저 금리(고시 기준)는 대부분 직장인 전용 대출 최저 금리 보다 높았다. 이들 은행 전문직 대출의 최저 금리는 연 2.23~3.87%였고, 직장인 대출 최저 금리는 연 1.92~2.89%였다.신한은행의 전문직 대출 최저 금리는 연 2.61%로, 직장인 대출 최저 금리(연 1.92%) 보다 0.7%포인트 높았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전문직 신용 대출 최저 금리도 각각 연 3.87%와 2.96%로, 직장인 신용 대출 최저 금리(각 연 2.75%, 2.53%)과 차이가 있었다. 농협은행에서는 두 직군 신용대출 최저금리가 연 2.23%로 같았고, 국민은행에서만 전문직 신용 대출 최저 금리가 연 2.61%로 직장인 신용 대출 최저금리(연 2.89%) 보다 소폭 낮았다.

전문직의 신용 대출 금리가 대부분 더 높아진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은행은 그동안 상환 능력이 우수한 전문직에 더 높은 한도와 낮은 금리를 보장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고소득·고신용자 대출부터 규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은행마다 3억~5억원 가량이었던 전문직 신용 대출 한도는 2억~3억원 수준으로 내렸고, 최저 금리도 전반적으로 올라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시된 최저 금리가 개인마다 무조건 적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실제 대출을 받을 때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우량 고객에 대한 우대 조건이 눈에 띄게 줄어든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중저신용자 문턱만 계속 낮아져

과도한 대출 규제가 신용 등급을 기반으로 한 금융 체계를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대금리 뿐 아니라 대출 한도도 고소득·고신용자부터 차례로 줄어들고 있다. 전문직·고소득자의 마이너스통장(한도대출) 한도는 최근 대부분 5000만원 이하로 내렸다. 고소득자가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가 영세 자영업자들이 받는 정책 대출 한도와 크게 차이나지 않을 정도다. 반면 중저신용자에 대한 금융 문턱은 계속 내려가고 있다. 내달까지인 서민·자영업자 대출 원금·이자 유예 조치는 한 차례 더 6개월간 연장될 예정이다. 코로나 피해를 받은 기업을 위해 신용등급 체계를 조정해 주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고, 재해를 입은 차주에게는 민간 은행의 신용 대출 원금을 감면해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대부업체 최고 금리를 연 20%로 제한하는 ‘이자 제한법’도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금융 상식·신용등급 체계 흔들려

코로나19의 장기화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따뜻한 금융’으로만 바라보기에는 민간 은행의 대출 시스템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한정된 재원으로 신용등급과 회수 가능성을 고려해 대출을 해 왔는데, 이 시스템이 흔들리면 자금이 필요한 곳으로 돌지 못하고 회수는 어려워진다”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예금이 비효율적으로 쓰이고 경제 회복 가능성도 줄어드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은행 임원도 “상업은행의 존재 가치를 흔드는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대출을 운영할 거면 차라리 민간에는 투자은행 업무만 남기고 정부가 직접 예금 및 대출을 해주는 은행을 운영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출 총량 규제가 사실상 개별 차주에 대한 ‘금리 개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잇따랐다. 금융연구원장을 지낸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금융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국내 금융회사가 점차 식물화, 정치화되고 있다”며 “의사 결정은 정부가 하고 그 이후 책임은 은행이 지는 형태의 대책이 이어지는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소람/김대훈/오현아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