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미얀마의 네피도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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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2
김봉렬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bongham@hanmail.net >2007년 미얀마 양곤문화대와 교류협정을 맺기 위해 양곤을 방문했다. 그전까지 나라 이름조차 버마로, 수도는 랑군(양곤의 영국식 옛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미얀마에 대한 사전 지식이란 한때 아시아 최강의 축구 강국이었다는 정도. 한 가지 더 있다면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45년간 여전히 군부 독재 중이라는 안타까운 정치 상황이었다.
양곤에 도착하자 곧바로 환영 만찬이었다. 성대한 환대 자리였지만 새로운 난관을 만났다. 이번 교류에 미얀마 정부의 관심이 높아 소관 부처인 문화부 장관에게 직접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부 청사가 양곤이 아닌, 새로운 수도 네피도에 있다는 게 문제였다. 국내 항공편은 오전에 단 한 편, 하루를 자고 돌아와야 한다. 경직된 미얀마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바꾸고 항공편을 예약해 이튿날 네피도로 떠났다. 왜 수도를 바꿨는지 아무도 확실한 답을 하지 않아 비행기에서도 내내 답답함이 가득했다.2005년 갑자기 옮겼다고 하니 2년밖에 안 된 신생 도시였다. 옮긴 이유도 불분명하고 심지어 외신에는 보안을 이유로 수도 이전지를 비밀로 했다고 한다. 공항에서 문화부로 가는 길도 황당했다. 왕복 14차선의 넓은 도로는 텅 비어 울창한 숲속에 뚫린 활주로 같았다. 현지 운전자도 헷갈리는지 복지부 청사로 잘못 갔다가 표지판을 찾아 겨우 문화부에 도착했다. 두 청사 건물은 규모와 형태가 똑같았다. 10여 개의 다른 정부청사도 표준설계에 의해 동일하다고 한다. 엄청 넓은 접견실에서 대령 출신인 문화부 장관을 만났다. 그의 국가주의 예술관을 듣자니 정훈 교육하러 여기까지 불렀나 의심이 솟았다.
세계의 많은 도시를 다니고 공부했지만 네피도와 같은 도시는 정말 처음이다. 도시의 연속성이란 전혀 없이 숲과 초원 속에 띄엄띄엄 시설을 반복 배치한 조각보 같은 도시였다. 도보 이동은 불가능하니 인간 중심의 전원도시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 족보에 없는 계획도시는 어디서 온 걸까? 네피도는 군부대식 계획을 따랐다. 대통령궁은 사령부이고 정부청사들은 대대본부 정도로 뚝뚝 떨어져 은폐했다. 획일화된 아파트촌인 주거지역은 군인숙소인 BOQ, 상업지역 역시 격리된 군대 매점인 PX의 확대판이었다. 군부대가 원형이니 외부 방문객은 오히려 없을수록 좋은 폐쇄적인 도시다. 게다가 시민 대부분은 통제를 따라야 하는 군인과 공무원이다.
이튿날 양곤행 비행기는 안내 방송도 없이 지연했다. 30분쯤 뒤 예약도 없이 권총까지 찬 별자리 둘이 타더니 우리더러 자리를 비우고 뒷자리로 가라고 한다. 항의도 했지만 애절한 승무원의 눈빛에 어쩔 수 없이 불편한 양보를 했다. 미얀마식 군부 독재의 잔가시에 찔렸다고 할까? 짧은 문민시대를 뒤엎고 또다시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황당한 네피도와 그 도시의 무도한 군인들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