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애호가' 신동빈 회장이 '픽'한 와인은? '트리벤토' [박동휘의 가성비 와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사진=뉴스1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재계에서도 손꼽히는 와인 애호가다. 여러 와인 중에서도 유독 아르헨티나산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상의 진미(眞味)를, 원한다면 쉽게 맛볼 수 있는 그가 왜 신대륙 중에서도 ‘와인 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받던 아르헨티나산(産)을 즐기는 것일까.

롯데그룹에 입사하기 전, 신 회장은 1981년부터 노무라증권에 입사하며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20대 중반이던 시절이다. 1988년까지 일했는데 대부분을 영국 런던에서 보냈다. 당시 런던은 전세계 와인의 보고(寶庫)였다. 영국은 프랑스와는 앙숙이지만, 프랑스가 만든 와인엔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와인을 사랑하는 민족이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칠레 등 신대륙 와인들은 영국의 와인 평론가들 손을 거쳐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해외에서 ‘월급쟁이’로 살던 20대의 ‘젊은 신동빈’에게 아르헨티나 와인은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와인이었을 것이다. 신 회장은 지인이나 임직원들에게 와인을 권할 때 아르헨티나산을 권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와인은 주로 자국 소비가 많아서 세계에 덜 알려져 있답니다. 가격 대비 맛을 감안하면 크게 실패할 일이 없어요”

롯데가 지난해 롯데를 대표하는 ‘시그니쳐’ 와인으로 트리벤토(Trivento)를 선택한데엔 신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 신 회장은 “제 이름을 걸고 마케팅을 해도 좋다”고 이례적으로 언급할 정도로 트리벤토에 애정을 표시했다고 한다. 신 회장이 소시적 런던의 어느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동료들과 주머니 사정 걱정없이 편하게 마셨던 와인이 바로 트리벤토였다.
신 회장이 트리벤토를 롯데를 대표하는 와인으로 ‘픽(pick)’하게 된 것은 몇 가지 우연이 겹친 결과다. 신 회장은 평소 백화점, 마트, 슈퍼 등 롯데쇼핑이 운영하는 매장을 둘러보곤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그리 심하지 않던 지난해 여름의 어느 날, 신 회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매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서울 마포구 공덕에 있는 롯데슈퍼에서 그의 눈에 트리벤토가 들어왔다. 가격은 1만7900원이었다. 며칠 뒤 롯데마트 또 다른 점포에서 트리벤토를 발견했는데, 같은 종류가 1만4900원에 팔리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신 회장은 롯데쇼핑이 야심차게 선보인 3900원짜리 초저가 와인을 시음한 터였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회장께서 롯데를 대표할 와인을 고민해보라며 트리벤토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론 일사천리. 롯데쇼핑과 롯데칠성음료, 대홍기획(롯데 계열 광고대행사) 등이 머리를 맞댔다. 우선 1년에 2만5000병 가량 수입하던 물량을 30만병으로 늘리기로 하고,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매장별로 가격차가 없도록 한 병당 1만900원에 수입했다. 테스코 등 런던의 주요 매장에서 팔리는 가격이 7유로(18일 환율 기준 약 9400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차가 거의 없는 셈이다.

신 회장이 트리벤토를 추천한 또 다른 이유는 이미 ‘검증된 맛’이란 점에서다. 영국에서 팔리는 아르헨티나 와인 중 단연 1위다. 연간 약 350만병 규모다. 트리벤토는 알마비바로 잘 알려진 칠레의 최상급 와이너리인 콘차이토로가 아르헨티나에 진출해 탄생시킨 가성비 와인이다. 롯데에서 나온 트리벤토는 3종이다.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적포도종인 말벡으로 만든 말벡 리저브는 달콤하면서도 단단한 타닌과 함께 부드러운 목넘김이 매력적이다. 런던의 주요 와인 평론가들은 함께 하면 좋을 음식으로 바비큐 요리를 꼽는다. 삼겹살 등 한국식 구이요리에도 아주 잘 어울린다는 얘기다. 필자는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김치찌게와 함께 마셨는데 의외의 궁합을 느낄 수 있었다. 트리벤토 카베르네소비뇽, 트리벤토 카베르네말벡도 뒤쳐지지 않는 맛을 자랑한다.

후일담. 원래 트리벤토의 별칭은 ‘프레지던트 빈(President Vin)’이었다고 한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을 연상시키면서 ‘와인의 왕(Vin은 영어로 와인을 뜻한다)’이란 중의적인 의미까지 담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롯데는 트리벤토를 ‘시그니처 와인’으로 최종 결정했다. 롯데 관계자는 “10만원짜리 와인의 맛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격은 3만~5만원대에 판매할 수 있는 와인에 ‘프레지던트 빈’이란 타이틀을 붙여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