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지원할테니 지분 넘겨라"…獨·이탈리아, 항공사 '국유화' 마찰
입력
수정
지면A8
정부주도 산업재편 갈등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들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정부에 손을 벌리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각국 정부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지분과 감독권을 요구해 기업과 마찰을 빚었다. 한국에선 코로나19로 반사이익을 본 기업에 이익을 공유하라는 정치권의 압박으로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韓, 이익공유제로 기업 압박
기안기금 실제 지원 6% 그쳐
각국 정부가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업종은 항공산업이다. 독일의 루프트한자, 이탈리아의 알리탈리아, 포르투갈의 탭 항공 등은 정부 지원을 대가로 지분을 넘겼다.루프트한자는 지난해 5월 독일 개발은행과 정부기업구제 펀드 등으로부터 90억유로(약 12조6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수혈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지분 20%를 넘길 것을 요구했다. 루프트한자의 지분 15.5%를 보유해 개인 최대주주인 하인즈 헤르만 틸레 크노르 브렘즈 회장은 “정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감독위원 의석 두 개도 갖겠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루프트한자 주주총회에서 정부의 구제금융안은 그대로 통과됐다.
알리탈리아와 탭 항공은 국유화 수순을 밟고 있다. 알리탈리아는 2017년 파산한 후 이탈리아 정부가 51%의 지분을 확보한 상태로 새 주인을 찾았지만 코로나19로 매각이 무산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해 5월 알리탈리아에 30억유로(약 4조원)를 추가로 투입했다. 탭 항공도 코로나19 이후 정부 지분율이 50%에서 72.5%로 높아졌다.
한국도 정부 주도로 항공산업이 재편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되자 산업은행 주도로 대한항공과의 합병이 추진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산은은 한진칼 지분 10.7%를 확보해 주요 주주가 됐다.항공과 해운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기간산업안정기금도 기업의 지분 취득을 요구할 수 있는 형태로 마련되면서 기업들이 자금 지원을 꺼리게 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40조원 규모로 조성된 기안기금의 실제 지원액은 6%인 2조4300억원 선에 그친다.
최근에는 정치권이 이익공유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계는 코로나19로 인해 이익을 얻는 것을 평가하기 어렵고, 말은 자발적 참여이지만 사실상 강제가 될 공산이 크다며 반대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확보전에서도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이 기업의 경영 활동과 국가별 협상 전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백신 개발 과정에서 자금을 공여받은 정부에 더 저렴한 가격으로 백신을 공급하는 회사가 나오고 있어서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