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스활명수, 독립운동 자금조달에도 쓰인 '만병통치약'

약 이야기
124년 된 '국산 1호 약품'

활명수에 탄산 채워 청량감 보완
1967년 현대식 액체 소화제 출시

가장 많이 먹은 일반의약품으로
올 들어 K바이오가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GC녹십자랩셀이 2조원이 넘는 기술 수출계약을 성사시킨 데 이어 이달 18일에는 제넥신이 ‘조(兆) 단위 기술수출’의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세계를 휩쓴 코로나19가 국내 제약·바이오업체에는 오히려 세계에 기술력을 뽐낼 기회가 됐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번주엔 ‘국산 1호 약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K바이오의 토대가 된 첫 제품입니다. 주인공은 속이 더부룩하면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화제 ‘까스활명수’입니다.까스활명수의 전신인 활명수의 등장은 대한제국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97년 궁중 선전관 민병호 선생이 궁중에서 쓰이던 생약의 비방에 서양의학을 접목해 개발한 약이 바로 이겁니다. 활명수는 국내 최초 약품이자 동시에 최초 양약(洋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사실상의 ‘국산 1호 신약’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합니다.

이후 민병호 선생은 아들 민강 선생과 함께 활명수 대중화를 위해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을 창업했습니다. 활명수가 개발된 시기에는 급체 등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는데, 당시 활명수는 그 의미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물’(살릴 活, 생명 命, 물 水)’로 불리며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활명수는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데도 쓰였습니다. 당시 동화약방 사장이던 민강 선생은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자금을 마련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행정책임자였습니다. 그 시절 활명수 한 병은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네요.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에 갈 때 활명수를 지참해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활동자금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해외에서도 팔렸으니 K바이오의 원조인 셈이죠.동화약방은 일제강점기에 상하이 임시정부와 국내 독립운동가들 사이의 비밀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운영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 순화동 동화약품 창업지에는 서울시가 세운 서울연통부 기념비가 있습니다.

오늘날 소비자에게 친숙한 까스활명수는 1967년 처음 나왔습니다. 기존 활명수에 탄산을 채워 청량감을 보강해 대표적인 액체 소화제로 자리 잡았죠. 1991년에는 브랜드 리뉴얼을 추진해 ‘까스활명수-큐’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제품도 다양화됐습니다. 2015년에는 오매(매실을 훈증한 생약성분)를 함유한 ‘미인활명수’를 출시했습니다. 어린이용 제품도 나왔죠. ‘꼬마활명수’는 만 5~7세를 위한 소화정장제로 스틱형 파우치 포장과 어린이 보호용 안전 포장을 적용했습니다. 작년에는 10mL 용량으로 복용량을 줄여 편의성을 높인 ‘활명수-유’를 새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기존 용량은 75mL입니다.2019년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에 따르면 가스활명수는 국민이 가장 많이 먹은 일반의약품으로 꼽혔습니다. 지난해 활명수 전체 브랜드 매출은 674억원이었고, 이 중 가스활명수-큐 매출이 447억원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활명수의 선전을 기대해 봅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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