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두고 돌연 등장한 10~20년前 '불법사찰'

현장에서

與 'MB 비서관' 박형준에 공세
野, DJ정부 '도청 사건' 맞받아
과거 회귀·네거티브 '이전투구'

성상훈 정치부 기자
“과거를 덮자는 게 아닙니다. 누가 봐도 ‘선거용’으로 보이니 문제인 겁니다.”

3선 출신의 한 전직 의원은 최근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는 ‘국정원 사찰 논란’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2009년 있었던 이명박(MB) 정부의 국정원 불법 사찰 의혹, 1998~2002년 있었던 김대중(DJ) 정부의 국정원 불법 도청 의혹이 2021년 선거를 앞두고 다시 등장했다.이 전직 의원은 “10~20년 지난 일이 하필 선거를 치르기 몇 달 전 나타난 걸 두고 국민 입장에서 ‘선거를 위한 게 아니다’고 생각하는 게 더 힘들 것”이라는 말도 했다.

발단은 국정원과 더불어민주당이었다. 국정원은 최근 한 언론을 통해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정치인과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다는 문건이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도 즉시 거들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불법 사찰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당시 청와대가 국정원에 이 정보를 관리하도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부산시장 선거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자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었다. 여당은 이 문제를 ‘박형준 때리기’로 이어갔다. 당 전략기획위원장인 정태호 민주당 의원은 “박 후보자 본인이 MB 정부 불법 사찰 내용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공세를 받던 야당 역시 결국 여당과 동일한 ‘과거 회귀’ 방식을 선택했다. 선거를 위한 트집 잡기라고 주장한 야당이었지만 이번엔 반대로 ‘김대중 정부 국정원의 도청 사건’을 등장시켰다.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인 박민식 전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DJ 정부 당시에도 불법 사찰이 있었다”며 “김대중 정권 국정원이 정치인, 기업인 등의 통화를 도청했다”고 밝혔다. 자신들이 비판하던 방식을 그대로 이용해 맞대응한 것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솔직히 DJ 정부까지 거론할 시점이나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자조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은 “생산성 없는 과거 논쟁이 아니라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하지만 선거 앞에선 이 같은 말도 ‘취사선택’용에 불과하다. 지금 정치인들에게는 ‘서울을 어떻게 스마트시티화할 것이냐’ ‘부산에 어떻게 스타트업 일자리를 만들 것이냐’ 등과 같은 미래 의제를 고민할 시간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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