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장터엔 1년도 안된 업소용 A급 물건 '봇물'

황학동중고시장·당근마켓엔
냉장고·커피머신 등 '역대급' 물량
창고 넘쳐 물품매입 중단하기도
“카페 폐업해서 물품 정리합니다. 장사가 워낙 안돼 새것 같은 상태입니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는 최근 매일같이 이런 글이 올라온다. 서울 종로구에서 운영하던 카페를 폐업한 이모씨는 “커피머신부터 의자, 탁자, 조명 등 각종 물품을 중고로 팔아 한 푼이라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사용한 지 1년6개월이 안 된 ‘A급’ 중고 물품이 대부분이지만 판매 가격은 구입 때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이씨는 “요즘 같은 때에 누가 장사하려고 들겠느냐”며 “거의 헐값에 물품을 내놔도 보름 넘게 팔리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 ‘헬로마켓’에선 지난해 ‘폐업’과 ‘가게 정리’ 키워드로 등록된 물품 건수가 전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오프라인 중고 시장도 비슷한 분위기다. 요즘 서울 황학동 중고가전·가구거리에는 매장마다 중고 주방기기가 한가득이다. 업소용 냉장고, 고기 불판, 그릇 등 종류별로 없는 게 없다. 판매업자들은 ‘역대급’으로 물량이 쌓였다고 입을 모은다. 진열장에 다 내놓지 못할 정도여서 창고에 보관 중인 게 많다고 했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후 폐업한 음식점과 카페가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유동인구가 줄고 상권이 무너져 매출이 줄어든 타격이 컸다는 전언이다.

중고 주방기기 판매업자 김모씨는 “최근 6개월 사이 제조 및 판매일자가 2019~2020년인 ‘신형’ 물품이 시장에 많이 쏟아졌다”며 “그만큼 개업 후 얼마 못 견디고 문을 닫은 자영업자가 많다는 얘기”라고 말했다.올 들어 물품 매입을 사실상 중단한 중고 주방기기 매장도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개업이 위축되면서 중고 주방기기를 구매하려는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물품이 빠지지 않아 보관할 곳을 고민해야 하는 판이다. 김씨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60% 이상 줄었다”며 “하루에 그릇 하나 못 팔고 공치는 날도 있다”고 했다.

중고매매상들은 이 같은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폐업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아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 상가 점포 수는 241만6252개였다. 직전 분기(255만9655개)보다 14만3403개(5.6%) 줄었다. 3개월 새 하루평균 1559개의 상가 점포가 문을 닫은 것이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