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당 태종의 경청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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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홍 < 한국IBM 대표이사 사장 kgm@kr.ibm.com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를 꼽으라면 대개 당(唐) 태종과 청(淸) 강희제가 언급된다. 강희제는 이민족 군주라서 그런지 중국인들이 내심 가장 흠모하는 황제는 당 태종이다. 29세의 나이로 당의 2대 황제에 오른 그는 중원을 위협하는 주변 민족을 복속해 중국 대륙의 통일과 안전을 확보하는 한편 중앙관제와 지방제도, 균전제(均田制)와 부병제(府兵制) 등 이후 모든 왕조의 전형이 된 통치체제를 확립했다.
그가 정관의 치(貞觀之治)라는 번영을 구가한 배경에는 군주의 탁월한 능력과 과단성 있는 리더십도 한몫했지만, 뛰어난 신하들의 역할 역시 컸다. 그중에 가장 널리 회자되는 인물이 위징(魏徵)이다. 위징은 태종이 하고자 하는 일에 사사건건 이치와 도리를 따져 발목을 잡는 간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운을 건 전쟁을 앞두고 군대를 모을 때 18세 미만의 남자도 징집하라는 황제의 조서 발송을 거부하는가 하면 지방 순행에서 음식과 잠자리에 불만을 내비친 황제의 면전에서 사치심을 거두라고 하는 등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아무리 어진 군주가 되려고 노력했던 태종이지만 하루는 불같이 화를 내며 황제를 능멸한 위징을 죽여버리겠다고 장손황후에게 토로했다. 이 말을 들은 황후는 조용히 물러나 공식 행사복인 조복(朝服)으로 갈아입고 큰절을 올렸다. 어리둥절한 태종에게 “군주가 밝아야 신하가 곧은 법입니다. 위징이 곧은 것은 폐하가 밝다는 뜻이니 경하할 일입니다”라고 해서 황제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조복진간(朝服進諫)의 고사다.
평생 200번이 넘는 간언으로 자신을 힘들게 했던 위징이 죽자 태종은 “구리로 거울을 삼으면 의관을 바로 할 수 있고, 옛일을 거울삼으면 왕업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 삼으면 자신의 득실을 알 수 있다. 위징이 죽음으로써 짐은 거울 하나를 잃었다”며 비통해했다고 정관정요 임현편에 기록돼 있다.
귀에 순한 말, 내 편의 말을 듣는 것은 경청이나 소통이 아니다. 주변에 온통 찬성하는 의견과 공덕을 칭송하는 소리만 들린다면 흐뭇해할 일이 아니라 기업이 위기에 처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겸청즉명 편신즉암(兼聽則明 偏信則暗). “군주가 현명해지는 것은 여러 방면의 이야기를 두루 듣기 때문이며, 아둔해지는 것은 몇 사람의 이야기만 치우쳐 믿기 때문이다.” 당 태종을 역사에 길이 남는 성군으로 만든 위징의 말이다.
목숨을 걸고 직언하는 신하와 조복진간 하는 부인이 있어서 위대한 군주가 됐는지, 지도자가 훌륭해서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졌는지 인과관계를 알 길은 없으나, 당 태종의 경청 기술이 중국 역사의 황금기를 연 초석이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