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계기로 기업수사청 생기나

급물살 타는 산업안전보건청 신설 논의
경사노위 합의 후 미적대던 고용부도 태세 전환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설립 추진에 힘실어
산업안전보건청 신설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당초 지난해 4월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한 사안이지만 1년 가까이 수면 아래 있던 이슈다. 하지만 지난달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다시 화두를 던진 이후 정부가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구체적인 신설 시기까지 언급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계기로 또 하나의 '기업수사청'이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2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참석해 "현재 (국 단위인) 산업안전보건 담당 조직을 확대해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우선 설치하고, 기능 및 조직을 확충한 이후 외청으로 독립 출범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후 이어진 의원들의 질의에 이 장관은 "산안청 설립에 찬성한다"고 재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처음부터 산안청 설립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4월 경사노위 산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산안청 설립을 포함한 다양한 시스템 개편을 검토·추진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산안청 설립은 그동안 노동계가 산업안전 감독 강화를 주장하며 오래 전부터 요구해온 사안이다. 2018년에는 고용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적폐청산위원회)가 산안청 설치 검토 등을 포함한 권고안을 내자 당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큰 의미가 있는 권고안”이라는 성명을 낸 바 있다.

경사노위에서 합의를 이뤘지만 경영계는 산업안전 감독 시스템 전문성 제고라는 취지에 동의하면서도 자칫 규제기관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시했다.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경사노위 논의 당시 정부는 산안청 설립과 관련 '산재예방 감독기관을 외청 형태로 하는 것과 여러 부처의 국 단위로 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재해 예방에 효과적인지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고, 입증된 자료도 없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산재예방 감독 체제는 법령과 역사, 문화 등과 연관돼있어 감독체제의 효과성은 단순히 체제 문제만으로 판단할 수 없어 산안청 신설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개진했다는 전언이다.

산업안전 주무부처인 고용부로서는 산안청이 신설되면 외청이 하나 생기는 것이지만 본부 조직이 축소되고, 신설되는 기관의 장 또한 고용부 출신으로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반길 일만은 아닐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에 주춤대던 고용부, 입장 바꾼 이유는?
그랬던 고용부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산안청 설립을 주창하고 나선 것은 연말연초를 기해서다.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산하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의 박두용 이사장의 임기를 1년 연장했다. 안전공단 이사장 연임은 1987년 공단 설립 이후 처음이다. '산안청 전도사'로 불리는 박 이사장을 1년 연임시킨 것은 올해 산안청 설립의 토대를 닦으라는 메시지라는 게 고용부 안팎의 평가였다.

고용부가 산안청 설립을 공언하고 나선 것은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이후다. 지난달 25일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달 초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제정한 중대재해법의 입법 취지에 따라 중대재해의 예방·관리·점검을 강화하려고 한다”며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산안청을 신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당에서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며 “김영주 민주당 의원의 제정안도 (지난해 7월) 국회에 이미 제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2017~2018년 고용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경사노위 합의에 이어 전임 장관이 관련 법안을 제출했음에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고용부가 전격적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을 두고 여당의 드라이브에 마지못해 끌려간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편 산안청이 설립되면 정부 조직은 현행 18부·5처·17청에서 18부·5처·18청으로 바뀐다. 역대 가장 큰 정부였던 노무현·이명박 정부(18부·4처·18청)를 넘어서게 된다. 이 때문에 경사노위 논의 당시 행정안전부는 산안청 설립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