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샤넬이 사라졌다?…현대백화점의 파격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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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현대백화점의 ‘야심작’인 ‘더 현대 서울’이 26일 첫 선을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블랙스완급’ 위기의 와중에 신규 백화점을 오픈하는 것으로, 국내 리테일 업계 초미의 관심사다.
‘더 현대 서울’의 개장이 갖고 있는 의미는 여러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다. 우선, ‘코로나 시대’ 오프라인 매장의 활로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집콕’과 ‘클릭 쇼핑’에 지친 쇼핑객들의 발길을 어느 정도 끌어올 수 있느냐는 유통을 포함한 국내 리테일 산업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줄 일종의 지표가 될 것이다.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전공 교수는 ‘언택트’ 시대 오프라인 기업들의 8가지 진화 전략을 소개하면서 이를 ‘리:스토어(Re:Store)’라는 개념으로 통칭했다. 매장의 재설정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요지는 물건을 채워넣는 빅 박스 스토어(big box store)로서의 전통적인 오프라인 매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황 교수가 제안한 8가지 전략이란 △리테일 테라피 △유쾌한 리테일 △리테일 랩 △공간 재창조 △진화한 아날로그 △피지컬+디지털 △클린 쇼핑 △쿨한 친환경 등이다. 아직 내부 공간이 베일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더 현대 서울’은 8가지 개념, 거의 전부를 수용한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껏 존재해왔던 국내 백화점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자’의 백화점인 셈이다.
현대백화점이 여의도에 구현하려고 하는 것 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리테일 테라피’ 개념이다. 쇼핑을 통한 치유, 다시 말해 ‘쇼핑 힐링’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을 코로나 시대에 맞게끔 공간을 재해석함으로써 이를 구현했다. 현대백화점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도심 속 자연주의를 콘셉트로 ‘리테일 테라피’ 개념을 적용한 국내 첫 자연친화형 미래 백화점 ‘더현대 서울(The Hyundai Seoul)’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공간 배정에서도 이 같은 의지가 읽힌다. ‘더현대 서울’의 전체 영업 면적(8만9100㎡) 가운데 매장 면적(4만 5527㎡)이 차지하는 비중은 51%로, 나머지 절반 가량의 공간(49%)을 실내 조경이나 고객 휴식 공간 등으로 꾸몄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더현대 서울’의 영업 면적 대비 매장 면적 비중은 현대백화점 15개 점포의 평균(65%)보다 30%(14%p) 가량 낮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느덧 1년을 넘어가고 있는 ‘코로나 일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의 행동 반경은 동네로 좁아졌다. ‘봉사를 받다’라는 의미의 ‘서빙’이란 단어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 자리는 ‘딜리버리(배달)’가 대신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만큼 반대급부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도 커지고 있다. ‘더 현대 서울’은 바로 이 점을 증명할 수 있는 거대한 실험장이다.
‘리테일 테라피’를 구현하기 위해 현대백화점은 엄청난 공력을 쏟아부었다. 1층에는 12m 높이의 인공 폭포를 설치했다. 일명 ‘워터폴 가든(740㎡, 224평)’이다. 5층은 실내 녹색 공원 ‘사운즈 포레스트(Sounds Forest, 3300㎡, 1000평)’가 들어선다. 천연 잔디에 30여 그루의 나무와 다양한 꽃들로 꾸며진 공간이다. 층고(層高)가 아파트 6층 높이인 20m에 달하는데다 자연 채광도 장점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공원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힐링 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더 현대 서울’ 개장에 관한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의 합성어)’라 불리는 유명 명품 브랜드 없이 개장한다는 것이다. 이들 3대 명품의 입점을 백화점 흥행과 동일시하던 기존의 ‘성공 방정식’을 깰 것이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명품업계에선 “여의도는 명품 상권이 아니다”라는 반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여의도는 대표적인 오피스 상권으로 주말이면 유동 인구가 확 줄어드는 곳”이라며 “3대 명품 브랜드 모두 아직까지 입점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현대백화점측은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판교점에서도 그랬듯이 유명 명품 브랜드들도 더 현대 서울의 진가를 알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양측이 팽팽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여의도점에 ‘더 현대 서울’이라는 고유명사를 붙일 정도로 파격을 시도했다. 압구정 본점을 능가하는 전에 없던 백화점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현대백화점은 백화점 이름에 지역명을 뺀 것에 대해 “여의도를 넘어 서울을 대표할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황 교수가 제시한 언택트 시대, 오프라인 매장의 생존 전략 중에서도 ‘사치’ 개념은 없다. 이른바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베블렌의 법칙을 활용한 그간의 백화점 생존 공식이 앞으로는 필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현대 서울’이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쇼핑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