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사태는 또 다른 기회 [이연정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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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선진국과 우리나라 가계의 금융자산 비율을 살펴보면 극명한 차이가 납니다.
사모펀드 사태는 예견된 사고 3편
퇴직연금 상품, 대부분 저금리 원금보장형 운영
자산관리 시장 성장 불구…PB숫자 늘리기만 치중
"고객의 자산, 정교하게 관리해야"
우리나라는 가계자산 가운데 금융자산 비중이 선진국 대비 현저히 낮을 뿐만 아니라 금융자산 내에서도 투자자산보다는 예금 및 보험이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노후 빈곤 예방책이 될 수 있는 퇴직연금 적립 규모가 성장했음에도 대부분 저금리의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퇴직연금의 주력 상품인 공모펀드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미국 연방은행이 지난해 9월말 발표한 자료를 보면 미국 가계와 비영리 기관의 총 자산에서 금융자산 비중은 70%에 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55~73세)는 자산의 절반 이상을 펀드에 투자하는 등 우리나라와는 달리 개인 투자자들이 펀드에 대해 높은 신뢰를 보이고 있습니다. 개인들이 펀드 가입을 통해 기업 자금의 주요 공급처 역할을 하면서 기업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펀드가 중산층의 주요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시스템이 뒷받침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401(k) 제도로 불리는 퇴직연금 규모의 성장과 함께 펀드 시장도 성장했습니다.
간접 투자 방식인 펀드 투자가 활성화되려면 실력 있는 전문 운용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투자자와 운용사를 연결하는 판매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시장에 투자하더라도 운용 실력에 따라 수익률 차이가 크고 같은 펀드라도 환매 시기가 매우 중요해서입니다. 펀드 판매사들은 포트폴리오를 고객 자산 관점에서 짭니다. 펀드 평가사 자료 등을 바탕으로 운용능력이 검증된 다양한 펀드를 가입하게 하고 각 펀드가 시장 수익률 대비 부진한 수익률이 지속되지 않는 한 금융 시장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우리나라 금융사들은 지난 수년간 자산관리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며 미래 수익원 확보 차원에서 프라이빗뱅커(PB) 사업을 경쟁적으로 확대했습니다. 하지만 자산관리 업무를 이행할 PB들을 투자 전문가로 양성하고 위험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는 PB 영업장의 외형 치장과 PB 숫자를 늘리는데 치중했습니다. 자산관리 사업을 제대로 바르게 키우기보다는 열매를 먼저 따고 싶은 욕심에 고객들을 수수료 수입의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체의 피와 같은 자금을 잘 흘려보내는 역할을 담당하는 은행은 이에 합당한 정교한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대출을 실행하듯 고객의 자금을 투자 전문가에게 연결하는 업무인 금융투자상품 판매 업무 또한 합당한 시스템을 갖추고 검증된 전문가에게 연결해야 합니다.
미국 최대 은행 그룹인 JP모건(JP Morgan Chase)은 순이자마진(NIM) 축소에도 불구하고 수수료 이익 증가로 우리나라 은행 그룹과는 달리 주가순자산비율(PBR)이 2011년 말 기준 0.72배에서 2019년 말 1.57배로 2배 이상 상승했습니다. 주가는 10년 전 대비 세 배 수준입니다. 지점망을 축소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까지는 지점망을 확대하며 직원을 늘렸습니다.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혁신적인 방안을 찾기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근본 원인을 파악해 고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은행은 신뢰를 기반으로 영업하는 곳이며, 자금을 연결하는 것이 주업입니다. 세계는 넓고 투자처는 많으며 자산관리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시장입니다. 의사를 양성하듯이 자산관리 인력을 양성하고 자사의 자산처럼 고객의 자산에 대한 위험도 정교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해결을 통해 우리나라가 금융강국으로 나아가는 새 길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연정 CFA 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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