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가장 많이 팔린 와인, 도스코파스 [박동휘의 가성비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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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와인베스트 100』이란 제목으로 국내 인기 와인 100종에 대한 ‘스토리’를 책으로 엮은 때가 2008년이었다. 그 시절만 해도 와인은 ‘신문물’에 속했다. 애주가들은 와인의 다양함에 열광했다. 공급 측면에서도 와인 수입사들은 군웅할거의 시대였다. 수입사들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등지를 돌아다니며 나름의 선구안으로 와인을 들여왔다. 2008년 필자의 졸저는 이 같은 다양성 속에서 탄생했다. 잘 팔린 순서대로 와인들을 줄 세울만한 시절이었다.10여 년이 흐른 요즘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어떤 와인이 잘 팔리나'라는 질문은 의미없는 물음이다. 와인 공급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마트가 국내 와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매출 기준)은 약 15%에 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이 같은 경향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호레카(호텔,레스토랑,카페)’라고 불리는 와인 온(on)트레이드 시장은 거의 괴멸 직전이다. 대신 ‘백마편(백화점, 마트, 편의점)’을 통해 판매되는 오프(off)트레이드 시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런 시절엔 시쳇말로 대형마트가 미는 와인이 가장 잘 팔리는 와인이 되기 마련이다.와인 시장의 이 같은 변화는 소비자에겐 유리한 점이 많다. 대형마트가 주도하다보니, 과거에 비해 와인 가격이 파격적으로 내려가고 있다. '바잉 파워'를 앞세워 해외 와인 제조자와 직접 협상을 하는 터라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가격을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품질 관리'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다. 수많은 와인 중에서 고르고 골라 내놓는 것들이라 품질 면에선 보증된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마트가 2019년 선보인 도스코파스(DOS COPAS)가 대표적이다. 현지에서 팔리는 가격보다 낮은 4900원이라는 가격 라벨을 달고 등장해 지금껏 약 310만병이 팔렸다. 역대 어떤 와인 브랜드도 가본 적이 없는 숫자다.
도스코파스는 와인 입문자들에게 제대로 된 와인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줬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마트의 경쟁사들도 "도스코파스가 와인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고 인정할 정도다. 과거에도 5000원 미만의 초저가 와인들이 시중에서 팔리고 있었지만, 대부분 달달한 스위트 와인들이거나 레드 와인은 공업용 알콜 냄새가 날 정도로 품질이 떨어졌다.
도스코파스는 이마트가 기획부터 판매까지 총괄한 와인이다. 과정은 이랬다. 우선 이마트 바이어가 4~5곳의 수입사에 해외에서 팔리는 와인 중 10달러 안팎의 가성비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엄선 끝에 15종이 최종 결선에 진출했다. 이마트 바이어는 조현철(조선호텔 소믈리에), 양윤주(2016년 한국소믈리에 대회 최연소 우승자), 유영진(워커힐 수석 소믈리에), 정하봉(메리어트호텔 소믈리에), 최한열(와인보우 대표) 등 5명의 와인 전문가를 초청해 이들에게 시음을 맡겼다. 명용진 이마트 와인담당 바이어는 "라벨을 가리고 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서 우선 3만, 4만원대 와인들을 먼저 시음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1만원 미만의 와인 중에서 3만원 이상의 와인과 비슷한 맛을 찾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여기에서 최종적으로 선발된 와인이 도스코파스다.
도스코파스는 '두 개의 잔'이라는 의미다. 이마트가 붙인 이름이다. 국내 주류법상 술은 유통업체 자체 브랜드(PB)로 만들 수 없어, 우선 해외에서 출시를 하고 이를 수입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마트가 '기획자'이다보니, 도스코파스를 제조하는 와이너리는 여러 곳이다. 가장 인기 있는 칠레산은 칠레 마울레밸리에서 가족 경영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비냐 아귀레가 맡았다. 이마트는 '압도적인 물량 개런티'를 통해 가격을 현지 판매가보다 낮게 설정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와인 수입 시 개런티하는 물량은 3000병 정도지만, 이마트는 첫 계약부터 그 300배 이상에 달하는 100만병 수입을 약속했다.
약 3년의 기획 단계를 거쳐 2019년 8월 탄생한 도스코파스는 가격과 품질을 모두 잡은 와인으로 출시 직후부터 '이슈몰이'를 하며 1년치 초도물량 100만병을 단 4개월만에 소진했다. 현재까지도 꾸준한 재구매가 발생하는 대표 테이블 와인으로 자리 잡았다. 4900원짜리 와인의 성공에 힘입어 이마트는 작년 7월 도스코파스 리제르바(8900원)를 출시했다. 생산은 포르투칼의 와이너리가 맡았다. 바닐라와 초콜렛 향이 감도는 아로마가 인상적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도스코파스는 와인 입문자들에게 제대로 된 와인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줬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마트의 경쟁사들도 "도스코파스가 와인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고 인정할 정도다. 과거에도 5000원 미만의 초저가 와인들이 시중에서 팔리고 있었지만, 대부분 달달한 스위트 와인들이거나 레드 와인은 공업용 알콜 냄새가 날 정도로 품질이 떨어졌다.
도스코파스는 이마트가 기획부터 판매까지 총괄한 와인이다. 과정은 이랬다. 우선 이마트 바이어가 4~5곳의 수입사에 해외에서 팔리는 와인 중 10달러 안팎의 가성비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엄선 끝에 15종이 최종 결선에 진출했다. 이마트 바이어는 조현철(조선호텔 소믈리에), 양윤주(2016년 한국소믈리에 대회 최연소 우승자), 유영진(워커힐 수석 소믈리에), 정하봉(메리어트호텔 소믈리에), 최한열(와인보우 대표) 등 5명의 와인 전문가를 초청해 이들에게 시음을 맡겼다. 명용진 이마트 와인담당 바이어는 "라벨을 가리고 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서 우선 3만, 4만원대 와인들을 먼저 시음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1만원 미만의 와인 중에서 3만원 이상의 와인과 비슷한 맛을 찾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여기에서 최종적으로 선발된 와인이 도스코파스다.
도스코파스는 '두 개의 잔'이라는 의미다. 이마트가 붙인 이름이다. 국내 주류법상 술은 유통업체 자체 브랜드(PB)로 만들 수 없어, 우선 해외에서 출시를 하고 이를 수입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마트가 '기획자'이다보니, 도스코파스를 제조하는 와이너리는 여러 곳이다. 가장 인기 있는 칠레산은 칠레 마울레밸리에서 가족 경영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비냐 아귀레가 맡았다. 이마트는 '압도적인 물량 개런티'를 통해 가격을 현지 판매가보다 낮게 설정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와인 수입 시 개런티하는 물량은 3000병 정도지만, 이마트는 첫 계약부터 그 300배 이상에 달하는 100만병 수입을 약속했다.
약 3년의 기획 단계를 거쳐 2019년 8월 탄생한 도스코파스는 가격과 품질을 모두 잡은 와인으로 출시 직후부터 '이슈몰이'를 하며 1년치 초도물량 100만병을 단 4개월만에 소진했다. 현재까지도 꾸준한 재구매가 발생하는 대표 테이블 와인으로 자리 잡았다. 4900원짜리 와인의 성공에 힘입어 이마트는 작년 7월 도스코파스 리제르바(8900원)를 출시했다. 생산은 포르투칼의 와이너리가 맡았다. 바닐라와 초콜렛 향이 감도는 아로마가 인상적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