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반도체 확보 초비상…D램 가격 석달 새 54% 급등

반도체 슈퍼사이클

지진·한파로 셧다운 "물량이 없다"
파운드리도 공급 부족 '신호'
“DRAM 수요는 전년 대비 약 15%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최근 한국거래소에 공시한 내용이다. 시장조사업체 IDC의 전망을 인용했지만 삼성전자가 공식 문서에 업황 전망을 구체적으로 표기한 것은 이례적이다. 업계에선 올해 D램 시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란 분석이 나온다. 스마트폰·데이터센터 업체들의 D램 매수세가 강해지면서 슈퍼사이클(장기호황)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D램 현물 값 1주일에 12% 급등

D램 슈퍼사이클 조짐이 확연하게 나타나는 지표는 D램 현물가격이다. 현물 거래 비중은 전체 거래의 10% 수준에 불과하지만 실시간 시장 상황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업황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25일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이날 기준 PC D램 범용제품 가격은 개당 4.28달러다. 최근 1주일 새 9.2%, 석달 새 54.1% 오를 정도로 상승세가 가파르다. 시장 분위기는 ‘공급자 우위’ 신호가 뚜렷하다. 업계 관계자는 “구매자들은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재고를 축적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지만 판매상이 물건을 안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주요 품목인 서버 D램에선 주요 구매처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북미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서버투자를 재개한 영향이 크다. 지난해 상반기 ‘홈 이코노미(재택경제)’ 확산에 따른 데이터 사용량 폭증에 공격적으로 서버 증설에 나섰던 데이터센터 업체들은 하반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재고가 쌓이며 서버 D램 구매도 확 줄였다.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외신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미국 뉴멕시코 로스루나스 캠퍼스에 데이터센터 2기를 추가 구축할 계획이다. 아마존도 프랑스에 데이터센터를 추가 건설하기 위해 정부에 허가 신청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서버 한 대엔 300GB 용량의 D램이 들어가는데, 이는 8GB 용량의 D램이 탑재되는 노트북, 2GB 정도가 필요한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시스템을 압도한다.

스마트폰용 반도체 수출 81% 급증

모바일 D램 상황도 긍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최근 오포, 비보,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재고 확보에 나서고 있다. 화웨이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점유율 경쟁’이 치열한 데다 언제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수출 지표도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1~20일 MCP(D램 등을 패키지로 만든 스마트폰용 반도체)의 인도 수출은 지난달 같은 기간 대비 81.2% 늘었다. 인도엔 삼성전자 등의 중저가 스마트폰 공장이 몰려 있다. 김영건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춘제(중국 설) 종료에 따라 중국 내 판매되는 스마트폰과 전자제품용 메모리반도체 주문이 재개될 전망”이라며 “D램과 MCP가 전반적인 메모리 반도체 수출 증가세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D램 생산업체는 단기간 급격하게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첨단기술을 적용한 제품 양산 등 ‘기술력 제고’와 ‘원가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공급 부족 신호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에서도 감지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업체 총매출은 225억9000만달러로, 작년 1분기(188억6700만달러) 대비 20% 증가할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최근 다양한 칩셋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고객사들이 조달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며 “수요가 공급을 추월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파운드리 기업 매출도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 하반기까지 공급 부족 지속”

시장 전망도 긍정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2분기 서버D램 가격 전망(트렌드포스 기준)은 기존 ‘8~13% 상승’에서 ‘10~15% 상승’으로 상향 조정됐다. 세계 5위권 D램 업체 대만 윈본드는 지난 8일 실적발표에서 D램 공급이 올 하반기까지 부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최근 상황은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의 초기 국면”이라며 “반도체 부족 현상이 1~2년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