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기회복의 역설…금융시장 '금리 쇼크'

10년 만기 국채금리 1.5% 돌파
美 경제 어떻길래

기업실적·소비·고용 개선 뚜렷
경제 조기 정상화 기대

백신 접종 영향
코로나 신규 감염자 이달들어 62% 줄어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의 여파로 뉴욕증시 주요 지수가 급락한 25일(현지시간) 트레이더들이 주식 시세를 살펴보고 있다. 최근 경기 회복이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며 미 국채 금리는 빠르게 치솟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뉴욕시는 26일(현지시간)부터 모든 식당의 실내영업 허용 인원을 최대치 대비 35%로 확대했다. 지난 12일 25% 한도로 영업 재개를 허용한 지 불과 2주일 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크게 줄었다는 판단에서다.

코로나19 백신 대규모 접종과 함께 미국 경제가 빠르게 살아나는 모습이다. 기업 실적은 물론 소비·고용지표도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최근 국채 금리가 급등한 것도 경제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한꺼번에 반영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미 노동부는 지난주 실업급여 청구건수가 73만 건을 기록했다고 25일 발표했다. 작년 11월 말 후 가장 적은 수치다. 1주일 전과 비교하면 11만1000건 감소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84만5000건)를 크게 밑돌았다.

이날 상무부는 작년 4분기 경제성장률을 4.1%(연율 기준)로, 지난달 내놓은 잠정치 대비 0.1%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올해 1월의 내구재 수주 실적은 전달보다 3.4% 늘었다. 증가폭이 시장 예상(1.0%)을 크게 웃돌았다.

작년 4분기(2021회계연도 1분기) 기업 실적도 예상 외 호조를 보였다. 투자자문사인 야데니리서치가 실적 공시를 마친 S&P500 상장업체를 전수 조사한 결과 ‘어닝 서프라이즈’ 비중이 80.6%에 달했다.
이처럼 미국 경제 회복세에 탄력이 붙은 배경엔 조만간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존스홉킨스대에 따르면 미국 내 하루 확진자는 이달 들어 지난 20일까지 전달에 비해 62% 줄었다. 지난달 줄곧 3000명을 넘었던 하루 사망자 수는 이달 들어 2000명대 초·중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최고의 부양책은 백신이란 점이 확인됐다”며 “올 3분기부터는 코로나19 이전 경제의 궤도를 약간 웃돌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기 회복세가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이 많아지면서 이날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전날보다 16bp(1bp=0.01%포인트) 급등한 연 1.54%로 마감했다. 작년 2월 19일(연 1.56%) 후 1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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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투자자문사인 세븐스리포트 리서치의 톰 에세이 창업자는 지난 24일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수주일 내 연 1.6%를 넘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채 수익률의 상승 압력이 매우 거세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채 금리는 단 하루 만인 25일 최고 연 1.614%를 찍었다가 1.54%로 마감했다. 짐 캐론 모건스탠리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시장에서 예상해온 10년 만기 국채의 올해 말 금리가 연 1.5%였다”며 “도달 시기를 9개월 이상 앞당긴 셈”이라고 말했다.

파월 발언도 믿지 않은 시장

최근의 국채 금리 급등을 불러온 건 아이러니하게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라는 분석이 많다. 미국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전망이 확산했고 장기 국채를 중심으로 수익률이 뛰었다는 것이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올해 초만 해도 연 0.9%대에 불과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2.0%의 물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 3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시장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경제가 정상화하면 인플레이션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시장에선 그렇게 되면 Fed가 조기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에 나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앞서 지난 17일 상무부가 발표한 소매판매도 재조명됐다. 지난달 소매판매는 전달보다 5.3% 늘어 전문가 예상치(1.1%)를 크게 웃돌았다. 작년 9월 이후 4개월 만에 반등한 것이기도 하다.

다음달 5일 나올 2월 실업률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미 실업률은 작년 4월 14.8%에 달했지만 지난달 6.3%까지 떨어졌다. Fed가 취약한 고용 현황에 대해 우려해왔으나 고용 지표는 개선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올해 성장률 6%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6% 성장률이 현실화하면 1984년(7.2%) 후 최고치가 된다.

백신 추가 공급에 슈퍼 부양책도 대기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존슨앤드존슨(J&J) 백신이 조만간 배포될 것이란 예상도 경제 정상화 기대를 키우는 요인이다. 미 식품의약국(FDA)이 J&J 백신의 예방 효과와 안전성을 이미 인정한 만큼 27일께 정식 사용 승인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다.

J&J 백신은 미국 내 임상시험 결과 72%의 예방 효과를 나타냈다. 코로나19 중증에 대한 효과는 86%로 더 높다. 이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로 입원하거나 사망할 확률이 크게 낮아진다는 의미다. 실제로 임상시험 중 이 백신을 맞고 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한 번 접종으로 항체를 형성할 수 있다. 일반 냉장온도에서 최소 3개월간 보관할 수 있어 대량 보급에 최적화돼 있다. J&J는 오는 6월 말까지 미국에 1억 회분의 백신을 공급할 계획이다.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슈퍼 부양책’도 다음달 초·중순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논란이 컸던 최저임금 인상안이 최종 부양법에서 빠지게 돼서다. 부양법은 큰 이견 없이 다음달 초 상원에서 통과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전문가들은 백신 보급 확대와 추가 부양책 시행이 경기 회복 속도를 앞당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진단했다.

주식에서 채권으로 자산 이동하나

국채 금리가 뛰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주식 등 위험자산에서 채권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연 1.5%를 넘어설 경우 주식의 평균 배당 수익률을 웃돌기 때문이다. 작년 기준 S&P500 지수의 배당 수익률은 연 1.48% 정도다. S&P 다우존스의 하워드 실버블랫 수석 분석가는 “미 국채는 안전한 자산일 뿐만 아니라 투자 매력까지 높아지게 됐다”며 “상대적으로 모든 주식이 위험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했다.

다만 최근의 국채 금리 급등세가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란 시각도 있다. 글로벌 채권 운용회사인 핌코의 대니얼 이바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경기 회복세가 강해지겠지만 인플레이션 우려는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며 “기술 혁신에 따른 비용 절감으로 물가 상승 압력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윌리엄스 총재는 “경제 전망이 낙관적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조만간 Fed 목표치(2.0%)에 가깝게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란 뜻은 아니다”며 “(최근의 금리 상승세는) 곧 진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