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파월의 수모…문재인 정부에 주는 시사점은?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美 양대 경제수장 진화에도
시장서 '인플레 공포' 커져

장기 금리 안정시키는
보완책 없이 부양책 추진
'하이퍼 인플레' 돌변 가능

시장 친화적 시각 없이는
어떠한 대책도 '무용지물'
작년 3월 중순 이후 전통적인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을 만큼 급등했던 주가가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불거진 미국 국채 금리 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미국의 양대 경제수장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긴급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약발이 종전만 못하다.

Fed 설립 이후 가장 ‘시장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양대 경제수장이 이번에는 잘 통하지 않은 것은 시장을 잘못 읽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 사태 1년을 맞은 증시는 유동성 장세에서 펀더멘털 장세로 넘어온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금융완화’보다 ‘트리플 Re’에 대한 확신이 더 절실한 상황이다.트리플 Re는 reflation(경기 회복), revenge consumption(보복 소비), restocking(재고 축적)의 접두어를 딴 용어다. 정책 처방 측면에서 리플레이션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경기 국면을 말한다. 너무 뜨거우면 ‘테이퍼링’ 우려가, 너무 차가우면 ‘통화정책의 무력화’ 명제가 불거지기 때문이다.

소비 측면에서는 보복 소비가 나타날지 여부가 큰 관심사다. 코로나 이후 각종 지원금에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저축이 늘어났다. 코로나 백신이 보급되면서 짓눌렸던 소비심리가 살아나 저축분이 소비로 연결된다면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이 설 수 있다. 총수요 항목별 국내총생산(GDP) 기여도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웃돌기 때문이다.생산 측면에서 재고 축적은 가장 확실한 경기 회복 판단지표다. 경기 순환상 저점을 통과한 국면에서 기업은 재고를 충분히 쌓아 놓아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자급자족 성격이 강해지면서 ‘아웃소싱’보다 ‘인소싱’이 중시되는 기업 생존전략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트리플 Re에 대한 확신이 선다면 최근 증시에 부담이 되고 있는 인플레이션과 국채 금리 상승 우려를 극복하고 주가는 추가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 하지만 양대 경제수장이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고용 창출’ 목표만 중시해 대규모 부양책과 금융완화 정책을 고집하다 보면 시장에서 반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트리플 Re 관점에서 파월 의장이 가장 강조했던 “물가 목표는 3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발언을 평가해 보면 코로나 이후 무제한으로 공급된 유동성이 실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금융과 실물 간 따로 노는 이분법 경제에서 금융완화를 지속해 나간다면 인플레이션 우려는 해소되기 힘들다.시장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 추진된 금융완화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상존하는 여건에서 비용(공급) 면에서 원유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이 뛰고 있다. 수요 면에서도 Fed가 내다보는 올해 성장률과 잠재 성장률을 기준으로 한다면 오쿤의 법칙상 2∼3%포인트의 ‘인플레 갭’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근 시장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인플레이션 우려는 정책과 공급, 수요 요인이 겹친 다중 복합 공선형 성격을 띠고 있어 지속성이 높고 정책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속도 면에서도 경기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리플레이션 성격이 짙지만 금융완화가 지속될 경우 어느 순간에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높다.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문제도 그렇다. 이미 시장에서 국채 금리가 상승하는 것이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단기 국채를 매각해 그 재원으로 장기 국채를 매입해 장기 금리를 안정시키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와 같은 보완책 없이 대규모 부양책을 추진한다면 국채 금리 상승에 따른 우려가 줄어들기는 힘들다.오히려 1990년대 후반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 시절에 추진됐던 ‘페이고’가 대규모 부양책보다 시장에서 바라는 재정정책이다. 페이고란 재정지출 총량을 늘리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부양 효과가 작은 일반 경직성 항목을 줄이고 그 삭감분을 경기부양 효과가 큰 투자성 항목으로 이전하는 정책을 말한다.

모든 경제 정책과 정책 당국자의 발언은 ‘시장 친화적’이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절실할수록 더 그렇게 해야 한다. ‘월가의 반란’이라 하는 미국 양대 경제수장의 수모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컨대 부동산 대책을 25차례나 내놓았는데도 여전히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를 정부 당국은 알아차려야 한다.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