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모란의 얼굴 - 최정례(195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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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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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웃는 것은 아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빨간 꽃잎 뒤에 원숭이 얼굴을 감추고일요일 아침 모두가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가자! 결의하고는 떠나고 있다
맹인의 지팡이 더듬어 잡고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문학과지성사) 中앞자리가 바뀌는 나이는 세월의 부피를 갖는 것만 같아요.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시간은 다 어디로 흘러갔을까요. 어쩌면 나는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떠나보내는 사람이었는지도 몰라요. 이상한 것은, 모두가 떠나보내는 사람이라면 과연 우리를 떠난 것은 누구였을까요. 그 깊은 다짐과 결의는 누구의 마음에서 싹튼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요. 오늘 하루가 더디게 흘러간다면 김광석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참 좋을 거예요.
이서하 시인(2016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