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사실적시 명예훼손 논란…갓난아기와 함께 수감도

조코위 "국민 정의감 충족시켜야"…경찰청 "처벌보다 조정"

한국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합헌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인도네시아에서도 같은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2일 일간 콤파스, 외신 등에 따르면 2008년 제정된 인도네시아의 전자정보거래법(UU ITE) 내용 가운데 온라인상 명예훼손, 신성모독, 혐오 발언 등 처벌 조항은 해석의 폭이 넓어 오랫동안 논란이 됐다.

특히 사실을 적시해도 처벌이 되기 때문에 피해자를 오히려 범죄자로 둔갑시킨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가령, 인도네시아 롬복섬 고등학교에서 행정직으로 일하던 여성 바이크 누릴이 교장의 성희롱 내용을 녹음해 남편과 교사들에게 들려줬다가 온라인에 퍼지자 전자정보거래법 위반 혐의로 2019년 징역 6개월을 확정받았다. 국제적 비판이 일자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의회에 사면을 요청해 풀려난 누릴은 "다른 어떤 사람도 나 같은 경험을 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지난달 8일에는 수마트라섬 아체주에서 이스마 카이라(33)라는 여성이 토지 분쟁으로 부모님이 마을 이장과 다투는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가 전자정보거래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3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스마가 공개한 동영상에는 이장이 그의 어머니를 때리려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이스마는 감옥에 수감되면서 생후 6개월 된 아기도 젖을 먹이기 위해 같이 데려갔다.

가뜩이나 전자정보거래법의 모호성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 갓난아기까지 같이 수감 생활을 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비난이 빗발쳤다.

발리에 사는 록가수 제린스(Jerinx)는 임신부 대상 코로나 검사를 비꼬며 "인도네시아 의료협회(IDI)와 병원들은 세계보건기구(WHO)의 하수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전자정보거래법 위반 혐의로 징역 14개월을 선고받았다. 인권단체들은 인도네시아의 전자정보거래법이 정부나 권력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막고, 피해자들을 탄압하는 데 악용된다고 문제를 제기해왔다.
올해 들어 전자정보거래법을 대폭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자 조코위 대통령은 지난달 "이 법이 가능한 한 공정하게 시행돼야 하고 국민의 정의감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치법률안보조정부는 지난달 22일 전자정보거래법 연구팀을 출범하고, 바이크 누릴을 초청해 그의 피해 사례를 듣는 간담회도 열었다.

인도네시아 경찰청장은 전자정보거래법 고소 사건 처리에 있어서 곧바로 처벌하기보다는 조정을 우선하도록 하고, 처벌 가능성이 있는 온라인 게시물을 삭제하라고 경고하는 등의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지난달 25일 헌법재판소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재판관 5(합헌)대4(일부 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리자 성폭력·학교폭력 등 공익을 위한 폭로도 처벌받아야 하느냐며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