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저자-독자 잇는 '에디터십'이 출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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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 출판인 (3)“출판사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에디터십(editorship)입니다. 저자가 준 재료를 독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읽어보라고 제안하는 게 출판사의 역할이니까요. 편집자들은 항상 이 에디터십을 스스로 찾아내 독자와 저자 사이에서 그 역할을 분명히 해야 돼요.”
기존 방식 벗어난 '발상의 전환'
작가들에게 기획안 먼저 제시
김용택 '시가 내게로…' 70만부
시리즈화로 새로운 영역 개척
엔솔로지 시집 누적 100만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59)는 인터뷰 내내 에디터십을 거듭 강조했다. 에디터십이란 편집자 정신 또는 편집자의 기획력이다. 그는 “에디터십을 최대한 살린 책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마음산책의 정체성이자 모든 출판사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를 서울 서교동 마음산책에서 만났다.정 대표는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문학적 언어와 예술적 사고를 더욱 쉽게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문학예술 책을 펴내겠다는 생각으로 2000년 8월 출판사를 차렸다. 소설과 시집, 에세이를 중심으로 영화, 미술, 음악 등 예술 관련 교양서를 주로 출간한다.
“당시에는 문학과지성사, 창비, 문학동네 등 이미 확실히 자리잡은 문학 출판사가 많았어요. 후발 주자로서 뭔가 새롭게 기획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자 고민해 보니 자연스럽게 에세이가 보였죠. 작가들이 써온 에세이를 검토하고 편집하는 기존의 방식 대신 먼저 작가들에게 기획안을 제시하고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구했어요. 발상의 전환이었죠.”
그가 기획한 첫 책은 2000년 10월 출간한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굴비 낚시》였다. 두 번째 책인 구효서 작가의 에세이 《인생은 지나간다》도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 20개에 대해 짧은 산문 형식으로 써달라는 기획안에서 시작됐다. 정 대표는 당시 에세이로는 드물게 그림과 사진을 과감하게 곁들였다. 문학을 보고 예술을 읽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책이다. 글만 읽거나 그림만 보는 게 아니라 소장하고 싶은 책을 원하는 독자들의 취향을 읽어낸 그의 에디터십이었다. 그는 “편집자가 어떻게 기획하느냐에 따라 에세이의 맛이 달라진다”며 “독자들에게 문학의 외연을 넓혀주기 위한 기획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마음산책의 성가를 높인 대표작으로 정 대표는 2001년 출간한 김용택 시인의 《시가 내게로 왔다》를 꼽았다. 김 시인이 매일 읽은 시 가운데 인상 깊었던 50편을 묶어 만든 이 시집은 70만 부가 팔렸다. “시는 어렵다고 생각했던 독자들의 생각을 완전히 깬 시집이었어요. 시마다 옆에 있는 김 시인의 감상글을 보고 ‘시를 분석할 필요 없이 그냥 느끼고 즐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아졌죠.”
김 시인 시집에서 정 대표는 또 다른 에디터십을 발견했다. ‘시리즈화’였다. 1, 2권을 낸 뒤 3권에선 난해한 것으로 알려진 미래파 시인들의 시집을, 4권에선 아동시를 냈다. 네 권의 책은 누적 판매량 100만 부를 넘기며 엔솔로지 시집 시대를 열었다. 이후 ‘짧은 소설’ 시리즈부터 박완서, 수전 손택, 보르헤스, 이해인 수녀 등 16권의 ‘말 시리즈’까지 상당수 책을 시리즈로 기획했다.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작가와 독자를 연결해주고 독자들과 호흡하는 책을 만들겠다는 게 정 대표의 생각이다. 한국출판인회의가 2019년 정 대표를 ‘올해의 출판인’으로, 책 전문 매체 채널예스가 지난해 마음산책을 ‘올해의 출판사’로 뽑은 이유다. 올해는 어떤 책을 펴내고 싶을까.“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크고 타인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한다는 걸 느꼈어요. 다양한 삶을 통해 내가 가진 그늘이 다른 사람에게도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