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투기 의혹' LH는 억울? 그들만의 이해상충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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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회계사가 배우자가 다니는 회사의 감사를 할 수 있게 된 지는 1년이 채 안 됩니다. 작년 4월30일 공인회계사와 회계법인의 직무제한 범위를 완화하는 공인회계사법이 시행되면서 가능해졌지요.
그렇다고 어떤 경우에라도 감사를 맡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배우자가 해당 회사의 재무 관련 부서에 근무하고 있을 경우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감사제한이 완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된 2019년 회계업계에 있었던 ‘웃지 못 할 일’들이 계기가 됐습니다. ‘아내나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감사를 맡지 못 한다’는 규정에 걸려 ‘회계사의 꽃’인 파트너 승진에 실패하는 회계사들이 속출했고, 이로 인해 “과도한 규제”란 여론이 비등했던 것이지요.
회계업계가 이런 규정을 두는 건 행여 있을지 모를 감사·피감사인간 이해상충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피감법인의 재무정보를 활용해 회계사와 그 가족들이 사적(私的) 이익을 취할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지요.
다소 과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민간기업의 ‘이해상충 방지’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높아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만도 할 것입니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들의 경기 광명신도시 예정지 내 ‘땅투기’ 혐의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새삼 이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정부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하겠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가 밝힌 이들의 투자행태는 꽤나 구체적입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LH 직원과 배우자, 지인 등이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시흥 과림‧무지내동 10개 필지(2만3028㎡)를 지분을 나눠 매입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상금을 많이 받기 위해 해당 토지에 나무도 심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KBS가 보도한 해당 직원의 반응이 주목을 끕니다. “뒤늦게 신도시로 지정돼 투기라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상적인 매매에 불과할 뿐”이라는 겁니다. 물론 법적 잣대를 들이댔을 때 LH 직원들의 행태가 불법인지 여부는 현 상황에서는 단언하기 어렵겠지요. 그렇지만 보도대로라면, ‘이해상충에 대한 LH 임직원들의 인식이 이 정도밖에 안 됐나’ 실망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는 자체적으로 글로벌 수준의 이해상충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민간 기업 종사자들 입장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예로 든 회계업계의 비현실적 규제가 아니더라도 요즘 민간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이해상충 눈높이는 크게 높아져있습니다. 시세조종 가능성이 상존하는 증권업계 역시 각종 내부 규정을 통해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대표적 업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 대형 증권사의 사례를 보죠. 이 증권사는 이해상충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관련 부서는 직원들 동의를 받아 배우자 및 미성년 자녀 계좌를 신고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리고 월별, 혹은 분기별로 매매 내역을 통보하도록 돼 있습니다. 어찌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이지만, 워낙 오랜 기간 시행하다보니 이제는 임직원들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민간기업 임직원들이 보기에 투기 의혹에 대한 LH 직원의 반응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국회의장이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아무렇지도 않게 법제사법위원회로 배정하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후보자 시절 부부의 주식투자가 청문회에서 문제가 되자 남편이 “부동산투자로 얻는 소득은 불로소득이라 생각했고, 그래도 보다 윤리적인 투자방법이 주식투자라 생각했다”고 해명해 논란을 키운 사례도 있습니다.
이 재판관은 서울중앙지법 재직 시절 이테크건설이라는 건설사가 하도급을 준 업체에서 발생한 사고를 둘러싼 보험금 책임을 다투는 재판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한 때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었던 당사자라는 점에서 이해상충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데도 이테크건설 주식의 거액을 투자했습니다.
이 재판관 부부의 주식투자 건은 검찰조사를 통해 법적으로는 무혐의로 처리됐습니다. 하지만 이해상충의 관점에서 보면 용납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민간기업들은 윤리적 잣대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와 있는데, 공공영역은 아직 한참을 뒤떨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고압적인 자세로 “○○○ 들어오라고 해”라고 외치는 걸 당연시하고 있으니,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라던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일갈이 얼마나 정곡을 찌른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그렇다고 어떤 경우에라도 감사를 맡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배우자가 해당 회사의 재무 관련 부서에 근무하고 있을 경우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감사제한이 완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된 2019년 회계업계에 있었던 ‘웃지 못 할 일’들이 계기가 됐습니다. ‘아내나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감사를 맡지 못 한다’는 규정에 걸려 ‘회계사의 꽃’인 파트너 승진에 실패하는 회계사들이 속출했고, 이로 인해 “과도한 규제”란 여론이 비등했던 것이지요.
회계업계가 이런 규정을 두는 건 행여 있을지 모를 감사·피감사인간 이해상충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피감법인의 재무정보를 활용해 회계사와 그 가족들이 사적(私的) 이익을 취할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지요.
다소 과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민간기업의 ‘이해상충 방지’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높아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만도 할 것입니다.
민간의 높아진 이해상충 눈높이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들의 경기 광명신도시 예정지 내 ‘땅투기’ 혐의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새삼 이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정부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하겠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가 밝힌 이들의 투자행태는 꽤나 구체적입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LH 직원과 배우자, 지인 등이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시흥 과림‧무지내동 10개 필지(2만3028㎡)를 지분을 나눠 매입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상금을 많이 받기 위해 해당 토지에 나무도 심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KBS가 보도한 해당 직원의 반응이 주목을 끕니다. “뒤늦게 신도시로 지정돼 투기라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상적인 매매에 불과할 뿐”이라는 겁니다. 물론 법적 잣대를 들이댔을 때 LH 직원들의 행태가 불법인지 여부는 현 상황에서는 단언하기 어렵겠지요. 그렇지만 보도대로라면, ‘이해상충에 대한 LH 임직원들의 인식이 이 정도밖에 안 됐나’ 실망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는 자체적으로 글로벌 수준의 이해상충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민간 기업 종사자들 입장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예로 든 회계업계의 비현실적 규제가 아니더라도 요즘 민간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이해상충 눈높이는 크게 높아져있습니다. 시세조종 가능성이 상존하는 증권업계 역시 각종 내부 규정을 통해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대표적 업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 대형 증권사의 사례를 보죠. 이 증권사는 이해상충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관련 부서는 직원들 동의를 받아 배우자 및 미성년 자녀 계좌를 신고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리고 월별, 혹은 분기별로 매매 내역을 통보하도록 돼 있습니다. 어찌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이지만, 워낙 오랜 기간 시행하다보니 이제는 임직원들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민간기업 임직원들이 보기에 투기 의혹에 대한 LH 직원의 반응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정치권 보고 배웠나
그렇다고 LH 직원들만 비판하고 말 일도 아닙니다. 따져보면 국회, 정부 등 공공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해상충에 대한 눈높이가 민간에 비해 총체적으로 낮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에 그렇습니다.국회의장이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아무렇지도 않게 법제사법위원회로 배정하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후보자 시절 부부의 주식투자가 청문회에서 문제가 되자 남편이 “부동산투자로 얻는 소득은 불로소득이라 생각했고, 그래도 보다 윤리적인 투자방법이 주식투자라 생각했다”고 해명해 논란을 키운 사례도 있습니다.
이 재판관은 서울중앙지법 재직 시절 이테크건설이라는 건설사가 하도급을 준 업체에서 발생한 사고를 둘러싼 보험금 책임을 다투는 재판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한 때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었던 당사자라는 점에서 이해상충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데도 이테크건설 주식의 거액을 투자했습니다.
이 재판관 부부의 주식투자 건은 검찰조사를 통해 법적으로는 무혐의로 처리됐습니다. 하지만 이해상충의 관점에서 보면 용납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민간기업들은 윤리적 잣대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와 있는데, 공공영역은 아직 한참을 뒤떨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고압적인 자세로 “○○○ 들어오라고 해”라고 외치는 걸 당연시하고 있으니,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라던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일갈이 얼마나 정곡을 찌른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