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상황에서 부족한 인공호흡기는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

의료윤리 난제들 소개한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번역출간

1918∼19년 대유행한 독감으로 미국에서만 50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다. 이런 팬데믹에 대비해 미국의 어느 주는 인공호흡기 분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인구 전체가 쓸 만큼 넉넉하게 인공호흡기를 비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주 전역의 병원과 요양원에는 이미 오랫동안 인공호흡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환자들이 있다. 만약 독감 대유행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많은 중증 독감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만성질환자들에게서 호흡기를 떼는 것이 윤리적일까?
미국의 의학박사이자 변호사, 작가, 생명윤리학자인 제이콥 M 애펠이 쓴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한빛비즈 펴냄)는 이런 의료 윤리 난제 79개를 소개한 책이다.
인공호흡기 분배 편에서는 의료 체계가 완전히 붕괴한 시기에도 평상시에 적용하는 의료규칙을 똑같이 적용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평상시 진료 과정에서는 대개 '먼저 온 환자 먼저'를 기준으로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지만, 전문가들은 팬데믹 상황에서는 이 방식을 적용하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고 한다. 이는 20세기 중반 소아마비가 대유행했을 때 철제 호흡 보조기를 '먼저 온 환자 먼저' 방식으로 배분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가 많았다는 경험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재앙 같은 상황에 적합한 인공호흡기 적용과 배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때 윤리적 논쟁이 벌어지는 문제는 '환자 중증도 분류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누구를 배제해야 하느냐'라고 설명한다. 뉴욕주가 2007년 마련한 분배 규칙 초안에서 제안한 배제 기준은 심장 정지, 예후가 나쁜 전이성 악성 종양, 중증 화상, 말기 신장 기능상실을 포함한 말기 장기 기능상실이었다고 한다.

당시 모든 투석환자가 이 기준에 해당해 큰 반발이 일었다.

이에 2015년에 수정한 규칙에서는 급성질환 치료 시설과 만성질환치료 시설의 삽관 환자를 모두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 만성질환자를 급성질환자와 별도로 고려해 인공호흡기를 징발하지 않기로 했다.

만성질환 치료 시설의 인공호흡기를 징발하면 더 많은 사람이 살겠지만 "그들은 다른 부류의 생존자일 것"이라고 언급하며 결정한 것이다.

이 밖에 책은 백혈병을 앓는 아들을 살리려고 착상 전 유전자 진단 검사 등을 통해 골수 이식을 위한 '구세주 아기(savior sibling)'를 만드는 문제와 사형수는 심장을 이식받을 자격이 있는지, 바이러스 보균자는 강제 격리해야 하는지 등의 딜레마를 다룬다. 김정아 옮김. 김준혁 감수. 396쪽. 1만7천800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