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에 등극한 원격의료, 다음은 플랫폼 전쟁
입력
수정
[애널리스트 칼럼]- 김충현 미래에셋대우 선임연구위원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뒤덮은 2020년은 역설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에 있어 상당히 의미있는 한 해였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세가 길어지며, 디지털 헬스케어가 자연스럽게 현실세계와 결합하게 된 것이다. 상당히 많은 디지털 헬스 기업들이 높은 매출성장과 더불어 높은 주가 상승을 기록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원격의료다. 미국과 중국의 대표 원격의료업체의 2020년 매출은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바이오산업에서는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달성한 의약품을 블록버스터라고 부른다. 디지털 헬스에서도 원격의료라는 블록버스터가 탄생한 것이다.
원격의료 산업의 외형이 크게 성장하면서, 원격의료 산업의 경쟁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본격적인 플랫폼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원격의료의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고용주나 건강보험사 등 의료비용 지불자를 고객으로 하는 지불자 모델(Payer Model)이다. 의료비용 지불자들에게 월간 구독료를 청구하고, 그들의 고용자나 가입자들이 원격진료 수요가 발생하면 원격의료 플랫폼에서 의사들을 매칭해주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모델을 활용한 글로벌 원격의료 사업이 블록버스터가 등장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헬스케어 산업의 가치사슬 내외에 존재하는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원격의료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가치사슬의 수직계열화를 통해서 원격의료 산업에 진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불자 모델(Payer model)에 대항하는 3가지 플랫폼이 탄생하고 있다. 첫째는, 병원과 의사 등 의료 공급자를 중심으로 지불자 모델이 제공하기 힘든 환자와 지속적인 관계형성을 장점으로 내세운 의료공급자 모델(Provider model)이다. 둘째는 민간 건강보험이 주도하는 모델(Health Plan Model)이다. 건강보험사는 지불자 모델(Payer model)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였으나, 전체 고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역으로 민간건강보험사가 원격의료 업체나 의료기관 인수를 시도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최대 민간 건강보험사 중 하나인 시그나는 원격의료 업체인 MDLive를 인수했다.
셋째는 온라인 의약품 배송 모델(Online Pharmacy model)이다. 주로 헬스케어 산업의 가치사슬 밖에 존재하는 글로벌 IT 대기업들이 시도하는 모델이다. 본인들의 기존 강점인 강력한 고객 트래픽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처음에는 일반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 배송으로 시작해서 점차 처방의약품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이후 원격의료 사업까지 진출하는 모델이다. 이처럼 원격의료 시장이 확대되면서 원격의료 시장의 경쟁구도가 지불자 모델에 대항하는 3가지 플랫폼간의 대결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원격의료 산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독자적 플랫폼을 구축하면서 플랫폼간의 대결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업체간의 합종연횡과 경쟁이 더 활발해질 것이다. 특히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한시적으로 의료정보보호규제(HIPPA)가 면제되었고, 원격의료 보험수가도 대면진료와 동일한 수가를 받는 정책이 시행되는 등 원격의료의 우호적인 정책이 시행된 한 해였다. 이를 달리 이야기하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질수록 원격의료 정책이 다시 변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이야기다. 이 역시 플랫폼 전쟁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