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키, 성장 호르몬 '지베렐린'이 결정한다

과학 이야기

과학과 놀자 (39) 장신 품종, 단신 품종 조절

씨없는 포도 개발·식물 생장억제에도 활용의 비밀
식물은 종자에서 싹이 트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서 일생(life cycle)을 마친다. 이 과정에는 많은 종류의 식물호르몬이 관여한다. 식물호르몬은 식물체 내에서 생산돼 미량으로도 다양한 생리작용을 조절하는 유기화합물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식물호르몬은 옥신, 사이토키닌, 지베렐린, 아브시스산, 에틸렌, 브라시노스테로이드, 살리실산, 자스몬산 등 10종이 있다. 이 가운데 지베렐린(gibberellic acid, GA)은 식물의 키(신장)를 조절하고 종자발아 촉진 등에 관여하는 물질이다.

사람에게도 성장호르몬이 있어 키가 작은 어린이를 크게 하는 데 사용하듯이 식물에서도 전통육종에 의한 방법 외에 화학물질, 유전자변형으로 키를 조절할 수 있다. GA 발견의 역사, 생체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생합성 과정), 농업적 이용 그리고 분자육종에 대해서 알아본다.

지베렐린(GA)의 발견

GA 연구는 1920년대 일본의 식물병리학자에 의해 시작됐다. 벼농사를 위한 못자리에서 벼를 연약하고 웃자라게 하는 병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벼가 웃자라서 농사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벼 키다리병으로 불렸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 못자리용 벼 종자를 반드시 소독을 해야 했다. 지금은 벼농사용 묘를 공장에서 건전하게 생산하고 있어 벼 키다리병을 볼 수 없다. 못자리 농사가 반(半)농사라 할 정도로 묘를 튼튼하게 키우는 것은 지금도 중요하다. 도쿄대 농화학자들은 많은 시행착오 끝에 벼를 웃자라게 하는 원인이 벼에 감염된 곰팡이(Gibberella fujikuroi)가 생산하는 물질(독소)인 것을 발견하고 1938년 GA를 분리하게 된다.

초기의 GA는 몇 종류의 곰팡이에서 발견되다가 1950년대 식물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면서 GA가 식물호르몬으로 인정받게 된다. 천연에서 분리된 GA의 종류는 140여 종 이상이 있으며 대부분은 식물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일부는 미생물에서만 발견되며 15종 안팎은 식물과 미생물에서 동시에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물체에서 발견된 GA 가운데 키를 크게 하는 데 관여하는 GA1 등 몇 종류의 호르몬을 활성형 GA라 한다. 미생물에는 GA3가 활성형 GA이다. 식물에 존재하는 GA1은 양이 매우 적어서 상업적으로 생산돼 농업에 이용되는 GA는 미생물발효에서 생산되는 GA3이다. GA를 발견하고 그 기능을 분석하는 연구에는 키가 작은 옥수수, 벼 등 돌연변이종이 많이 활용되었다.

GA의 화학식과 생합성 연구

(그림1) GA1의 화학 구조식
GA는 디테르펜(diterpene)계 화합물로 메발론산(MVA)에서 유래하는 탄소(C)수 5개의 이소프렌 단위(isoprene unit)가 4개 결합해 만들어진다(그림1은 가장 중요한 GA1의 화학 구조식이다). 방사성 동위원소로 표시된 전구물질(주로 탄소나 수소)을 생체에 투여하여 변화를 추적해 천연물의 생합성 과정을 연구한 결과 GA의 생합성은 MVA로부터 약 20 단계를 거쳐 탄소수 19개인 GA1을 생성한다.
(그림2) GA 생합성 억제를 통한 밀의 키 조절 실험. GA의 2번 탄소에 수산화기(OH)를 도입하는 효소를 활성화하면 다양한 키의 밀을 만들 수 있다. 맨 왼쪽이 정상적인 밀. 출처: Trends in Plant Science(2000)
GA1은 전 단계 GA20에서 3번 탄소(C)와 결합한 수소(H)가 수산화기(OH)로 바뀐 것이다. 흥미롭게도 GA1에서 2번 탄소 위치에 OH가 결합된 GA8은 키를 크게 하는 활성이 없는 비활성형 GA가 된다. 활성형 GA의 OH나 카복실기(COOH)에 당(glucose)이 첨가되면 비활성화돼 항상성(homeostasis)을 조절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3번 탄소 위치의 수산화반응은 활성화에, 2번 탄소 위치의 수산화는 비활성화에 중요하게 관여하는 것이 생합성연구 결과 밝혀졌다. 필자는 GA1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강낭콩 미성숙종자에서 ‘GA 3탄소 수산화효소(GA 3β hydoxylase)’를 분리하여 그 성질을 처음으로 규명하였다. GA 생합성에 관여하는 효소유전자를 잘 조절하면 식물의 키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한다(그림2).

GA의 농업적 이용과 분자육종 전망

미생물발효로 GA를 양산할 수 있게 되면서 GA의 생리작용 및 농업에 이용하는 데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GA는 식물체 줄기에 대한 신장효과가 가장 중시되어 생장호르몬이라 부르기도 한다. GA는 종자 발아를 촉진하며 휴면종자의 발아촉진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GA는 일부 식물에서 일장조절(빛이 쪼여지는 시간을 백열전구 등으로 인위적으로 조절)과 춘화처리(온도를 조절) 없이 개화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GA를 처리하여 씨 없는 포도(거봉)를 생산하고 있으나, 아직 정확한 이유를 몰라 앞으로의 연구과제이다.GA 생합성을 억제하여 식물의 키를 작게 하는 식물왜화제 또는 식물생장억제제(plant growth retardant)도 개발되어 화훼류에 이용되고 있다. 키만 작게 하면 강한 바람에 견딜 수 있고, 키를 크게 하면 바이오매스(생물체를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얻는 방식)를 많게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첨단 유전체 정보와 형질전환기술을 이용한 분자육종으로 GA 생합성을 조절하여 인위적으로 키를 조절하는 농작물이 개발되고 있어 더 많은 실용화가 기대된다.

√ 기억해주세요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지베렐린(gibberellic acid, GA)은 식물의 키(신장)를 조절하고 종자발아 촉진 등에 관여하는 물질이다. 사람에게도 성장호르몬이 있어 키가 작은 어린이를 크게 하는 데 사용하듯이 식물에서도 전통육종에 의한 방법 외에 화학물질, 유전자변형으로 키를 조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