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바람난 줄 알았는데 다 제 망상이었어요"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부부의 작은 오해는 불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남편의 불륜을 의심해 이혼을 요구한 여성이 후회하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화제다.

"사람 한 명 살린다 생각하시고 지혜를 모아주세요. ㅠㅠ" 신혼인 A 씨는 최근 친구로부터 남편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야, 이거 네 남편 아니야? 혹시 몰라서 보내본다."

친구가 보낸 사진엔 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또 다른 사진에서 남편은 세 명의 여자와 식사를 했고, 그중 한 명과 유독 각별해 보였다.

"남편이 미남은 아니지만 남자답고 시원시원한 성격이라 연애 때부터 인기가 많았어요. 사진을 보자마자 '바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A 씨는 부모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남편이 불륜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부모님은 "이게 무슨 바람이야. 동료들이랑 밥 먹고 커피 마시는 평범한 상황인 것 같은데"라고 A 씨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A 씨의 머릿속은 '남편=바람 피우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부모가 서운하기까지 했다.

A 씨는 부모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남편이 요즘 퇴근도 늦고, 핸드폰 비번도 생겼어요. 전화받을 때도 날 피해서 받고 안 먹던 술도 먹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토요일도 출근하고 없던 야근도 잦아졌어요"라고 했다. 모두 A 씨의 거짓말이었다.

딸의 거짓말을 믿은 부모는 시댁에 남편의 불륜을 알리고 이혼을 요구했다. A 씨는 "남편이 불결하고 더럽게 느껴졌어요. 단 1초도 함께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라며 당시 심경을 전했다.

친정, 시댁 부모가 추궁하자 남편은 "모두 오해"라며 "거래처 사람들이랑 밥 먹은 것"이라고 결백을 주장했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한 A 씨 남동생이 주말에 집으로 찾아가 남편 차를 부수고 얼굴을 때렸다. 남편 앞니는 부러져 발치했다.

남동생에게 폭행을 당한 후 남편은 A 씨에게 "그래 네가 원하던 이혼해 줄게"라고 했다.

남동생은 "상간녀도 죗값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남편과 밥을 먹은 여성의 직장에 찾아갔다.

해탈한 얼굴로 돌아온 남동생. "누나, 그거 전부 오해야. 그 여자는 형 거래처 대표 친척에다 임신 중이더라. 그날 대표, 형, 그 여성분 이렇게 밥 먹기로 했는데 대표님이 못 오는 바람에 다른 팀원(여자)들과 밥 먹은 거였어."

A 씨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을 찾아가 "내가 잠시 뭐에 쓰였었나봐. 전부 오해니까 용서해 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의 마음은 이미 돌아선 상태였다. "너한테 정 다 떨어졌어. 이대로는 못 살아. 너희 집 모두 싫어. 애도 없으니 이혼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A 씨가 사정을 해 봤지만 남편은 이혼을 거부하면 남동생을 폭행으로 신고할 거라고 말했다. "서로 험한 꼴 봐서 좋을 게 없지 않아? 그냥 이혼하자."

A 씨는 "아무리 빌어도 남편은 이혼만 요구하고 있어요. 친정 부모님도, 남동생도 잘못했다고 연락했지만 이혼하겠다고 하네요. 경솔했던 제가 분명 잘못했지만, 이대로 이혼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네티즌들은 "남편이 겪은 폭행과 트라우마는 잊기 힘들 것", "상상과 현실도 구분 못하다니 정신과 치료를 받아 보는 게 좋을 듯", "남동생이 거래처 대표 만나러 간 순간 이미 남편의 회사 생활은 끝났다. 와이프가 '의부증'이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괜히 그랬겠어?'라며 합리적 의심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등의 반응을 보이며 A 씨의 남편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A 씨와 같이 배우자의 정조를 의심하는 것을 '부정망상'이라고 한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으로 알려진 이 질병은 이른바 '오셀로 증후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의 주인공이 아내 데스데모나와 자신의 부하가 불륜 관계라는 거짓 보고를 받고 아내를 결국 죽이게 되는데 오셀로의 아내에 대한 의심을 이같이 부르게 됐다.

이 질병의 환자들은 증거가 확실해도 믿지 않고, 배우자가 불륜했다고 확신한다. 망상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위해 도청, 녹음, 비디오 촬영, 미행, 폭력 등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정상적이기 때문에 치료 시기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의사와 환자도 망상 속 한 인물이 되기 쉽기에 정신과 질병 가운데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병으로 알려져 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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