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써도 안 나오던 게임 아이템…넥슨, '판도라 상자' 연다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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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5일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키로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넥슨이 5일 전격 아이템 확률 공개를 선언했다. 그동안 확률형 아이템은 사용자들이 불분명한 확률로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유료 결제를 지속해 '카지노 슬롯머신'에 비유되며 사회 문제로 지적돼 왔다. 2018년에는 게임업계가 사행성을 조장한다며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논란 반성, 유료 및 강화 아이템 확률 공개"
"아이템, 1억 넘게 투자해도 얻을 지 알 수 없어"
엔씨소프트 등 게임업계 전반으로 번질지 관심
판도라 여는 넥슨…1호는 '메이플스토리'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이날 사내 메시지를 통해 "(최근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모든 것이 저를 포함한 경영진의 몫"이라며 "넥슨과 넥슨 게임을 대하는 눈높이가 달라지고 게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눈높이가 달라지고 있는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에 반성한다"고 밝혔다.넥슨은 우선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메이플 스토리'의 큐브 아이템 확률을 이날 중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이 게임을 하는 게이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등급 업그레이드 확률을 포함한 세부 수치도 공개한다. 이외에 '유료 확률형 아이템' 정보에 '유료 강화' 확률까지 공개하는 작업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이에 더해 '무작위', '랜덤' 같은 애매모호한 표현 사용을 중단하고 확률과 관련한 용어는 확률표 공개 등을 통해 논란을 막겠다고 했다.2004년 국내 게임사 중에선 처음으로 넥슨이 출시한 것으로 알려진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사들엔 '캐시카우'였다. 게이머들이 레벨을 높일 수 있는 아이템들을 얻기 위해 2000~3000원가량의 소액 결제를 지속하면서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확률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지를 사용자는 알 수 없었다. 넥슨은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아이템 '허위·기만적' 정보 제공을 사유로 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자율 규제 '꼼수'로 피해간 게임업계
2015년 국내 게임사들이 구성한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업계 자율로 유료 아이템의 경우 습득 확률을 공개하기로 했지만 그동안 게임업체들은 유료와 무료 아이템을 섞어서 추첨하는 방식으로 자율 규제를 피해갔다. 일부 게임업체들이 과징금 등을 부과받았지만 과징금 규모에 비해 확률형 아이템 사업으로 얻는 이득이 훨신 컸다.이런 상황에서 국내 모바일게임 1위 엔씨소프트가 최근 새로운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하자 이용자들의 불만이 폭주하면서 지난 16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 및 모든 게임 내 정보의 공개를 청원한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청원인은 "카지노 슬롯머신 같은 도박도 확률을 다 공개하는데 게임도 아이템이 나올 확률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최근 일부 이용자들은 판교 게임사들 앞으로 전광판 트럭을 몰고 가 "강원랜드도 슬롯머신 확률을 공개한다"며 시위를 벌였고, 국회에서 게임업체의 아이템 확률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모든 게임 아이템 확률을 공개하는 내용의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오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확률을 공개하지 않은 사업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다른 게임사로 번질까
국내 1위 게임사인 넥슨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기로 하면서 그동안 "영업비밀 침해"라고 주장하며 피해갔던 엔씨소프트 등도 공개 대열에 동참할지 관심사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리니지2M 게임 내 최상급 무기인 '신화 무기'를 만드는 방법을 공개했는데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이를 만들려면 적어도 1억원을 넘게 써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사실상 이번 확률형 아이템 논란의 불을 지핀 당사자다.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2019년 확률형 아이템 논란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청소년 유료 결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적극 검토하겠다"면서도 "확률형 아이템은 베팅을 하는 도박과는 다르며 게임 내에서 사행성을 유도하지는 않는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