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시장 감산조치' 연장…"유가 75달러까지 치솟을 것"


석유수출국기구(OPEC) 소속 13개국과 러시아 등 10개 주요 산유국 연합체인 OPEC+이 일평균 약 700만배럴 규모 감산조치를 한 달 연장하기로 했다. 산유량을 기존 대비 하루 평균 약 150만배럴 늘릴 것이라는 당초 시장 예상과 정반대 움직임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수개월 내에 유가가 크게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OPEC+은 이날 온라인 화상회의를 열고 다음달까지 기존 감산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만 각각 일평균 13만배럴, 2만배럴 규모로 공급을 늘릴 수 있게 했다. 지난 1월 초 합의 내용과 같은 틀에서 기존 대비 증산량만 소폭 늘렸다.

사우디는 OPEC+ 감산과 별개로 하고 있는 일평균 100만배럴 규모 감산을 지속하기로 했다. OPEC+는 다음달 1일 회의를 다시 열고 감산량 조절을 결정할 방침이다.

OPEC+의 감산 결정에 한동안 ‘눈치보기’ 횡보장을 거친 원유 가격은 일제히 급등했다. 5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4월물은 배럴당 64.38달러에 거래됐다. 2019년 4월 이후 최고가다.
브렌트유 5월물은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2019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배럴당 67.29달러에 팔렸다. 두 유종 모두 가격이 전날 4%대 상승에 이어 이날 1.2% 가량 더 올랐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유가 상승 여지가 훨씬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통상 OPEC+이 감산을 할 때 미국 셰일기업들이 에너지 생산을 늘리지만, 최근엔 미국 기업들도 섣불리 증산에 나서지 않는 분위기라서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의 라울 르블랑 애널리스트는 "지금 미국 에너지기업들은 높아진 유가 '미끼'를 물지 않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그는 “미국 에너지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 휘청인 경험 때문에 쉽게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며 “주요 기업들은 작년 크게 줄이거나 아예 중지했던 주주 배당을 늘려야 해 자금을 증산에 투입할 여유가 없다”고 설명했다.르블랑 애널리스트는 "일부 기업이 유전 활동을 늘릴 가능성이 있지만 미국내 에너지 생산량을 의미있게 끌어올릴 정도는 안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 기업도 비슷한 얘기를 내놓고 있다. 북미 주요 에너지기업 중 하나인 코노코필립스의 라이언 랜스 최고경영자(CEO)는 "에너지기업 입장에선 미국 기업들이 빠르게 생산을 늘리는게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이번 시장에선 각 기업이 좀더 체계적인 접근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는 헤스코퍼레이션의 존 헤스 CEO가 "몇년 전만해도 페름분지 일대 에너지 기업들은 유가가 오르면 당장 시추를 늘렸지만, 이젠 충분한 여유 자금 확보가 우선인 분위기"라고 말했다.일각에선 원유 가격이 배럴당 7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컨설팅기업 우드맥킨지의 앤루이 히틀 부사장은 “각국에서 연료 소비가 회복되는 와중에 감산이 연장됐다”며 “다음달 중엔 원유 가격이 배럴당 70~75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암리타 센 에너지애스펙츠 원유부문 선임애널리스트는 "원유시장이 지나치게 긴축될 위험이 있다"며 "올해 중 셰일기업들도 가격 상승세에 즉각 대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공급량이 부족할 수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채권시장 등이 인플레이션 조짐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OPEC+의 이번 움직임은 각국 중앙은행의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유가격이 오르면 각종 석유제품 원가와 소비재 등 물류 비용이 상승해 연쇄적 물가상승이 일어날 수 있어서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