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경제활동이라더니…" 강화된 방역기준에 뿔난 전시·컨벤션업계

정부 '8㎡당 1명' 새 거리두기 개편안 제시
현행 2단계 시 4㎡당 1명 기준보다 높아져
업계 "또 찬밥신세… 수칙 지키면 뭐하나"
5일 정부가 제시한 거리두기 개편안에 대해 전시·컨벤션 등 마이스(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업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시설 폐쇄를 최소한으로 줄였다"는 정부 설명과 달리 전시·박람회, 컨벤션 등 행사에 대한 방역기준은 전보다 더 강화됐기 때문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5일 사회적 거리두기 체계 개편안 공청회에서 기존 다섯 단계인 거리두기를 네 단계로 줄이는 개편안을 내놨다. 각 단계를 환자 수에 따라 전환하면서 특별한 기준 없이 시행하던 '5인 이상 모임 금지'조치를 단계에 따라 3인·5인·9인 등으로 구분 적용하는 게 골자다.
지난 5일 정부의 새 거리두기 개편안에 전시컨벤션 등 마이스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각종 행사에 대한 수용인원 제한기준이 2단계 기준 시설 면적 4㎡당 1명에서 8㎡당 1명으로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전시회와 컨벤션 행사를 필수 산업 및 경제 부문으로 인정한 바 있다.
○시설 폐쇄 최소화 취지 무색 "강화된 방역기준"
새 개편안이 적용될 경우 현재 수도권과 전국은 거리두기 2단계(10만 명당 0.7명 이상)에 해당돼 코로나 통금과 영업시설 운영제한이 없어진다. 다만 9명 이상 모임이 제한되고 결혼식과 장례식, 각종 행사와 집회는 100명 미만 규모만 허용된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이날 "시설 폐쇄 최소화에 초점을 맞춘 새 거리두기 방안이 자영업자 등의 시설 폐쇄가 크게 줄어들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거리두기 단계별로 적용되는 수용인원 제한기준의 현실화를 요구했던 전시·컨벤션업계는 정부 개편안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개편안에 따를 경우 기존보다 더 강화된 방역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현행 거리두기 단계에서 전시장과 호텔 등에서 열리는 행사는 2단계 시 4㎡당 1명으로 수용인원을 제한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새 개편안이 적용될 경우 2단계에서 8㎡당 1명으로 수용가능한 인원이 1/2로 줄어든다.

전시·컨벤션 등 마이스업계는 새 개편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부 측에 2단계와 3단계 허용기준을 4㎡당 1명으로 완화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시산업진흥회 관계자는 "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 서울시 등과 사전협의를 통해 거리두기 2단계부터 인원제한을 적용해 2·3단계는 4㎡당, 3단계는 8㎡당 1명을 제안했는데 개편안에는 이러한 업계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전시주최회사 대표는 "개편안을 마련할 때에는 그동안 방역활동과 성과를 염두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업계가 그동안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방역활동을 통해 보여준 성과는 외면한 채, 마치 행사가 바이러스 확산의 요인인 것처럼 규제만 하려 든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전시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가 1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몇 번씩 똑같은 얘기를 해야하는 현실에 분통이 터진다"며 "정부가 매번 업계가 단체행동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 초 경기도 고양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열린 '제53회 MBC 건축박람회'. 코로나19 사태에서 처음 열린 이 행사는 전시장 진입부터 행사장 내부까지 총 5단계에 이르는 '겹겹이' 방역조치로 국내외에서 "전시컨벤션 행사의 방역 우수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 김범준기자 bjk07@hankyung.com
○오락가락 정부 입장 "마이스 또 찬밥신세"
업계가 이렇게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1년간 전국 전시장에서 열린 전시·박람회와 컨벤션 행사에서 단 한 건의 확진자나 감염 전파 사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행사 취소·연기 사태를 맞은 업계는 지난해 5월 행사 재개에 들어갔다.

당시 행사장에선 건물 진입 때부터 거리두기와 발열체크, 손소독에 이르는 4~5단계의 겹겹이 방역이 이뤄졌다. 전시장은 실내 공기질 관리를 위해 평소 20~30% 수준으로만 가동하던 공조시설을 풀가동해 실내에 수시로 외부공기를 공급했다. 한 전시장 관계자는 "전시컨벤션센터는 천장 높이가 9~17m로 높아 백화점, 대형마트에 비해 공간 밀폐도가 훨씬 낮다"며 "게다가 모든 행사가 참여회사와 관람객 정보를 기록으로 남기기 때문에 동선을 파악하는 데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 킨텍스는 국제전시연합(UFI)에서 방역 성공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방역 당국에서도 4~5단계 겹겹이 방역조치로 사전에 감염 의심자를 격리시켜 추가 감염이 발생하지 않은 킨텍스 행사를 방역 모범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외국계 한 전시회사 관계자는 "한국의 전시·박람회에서 이뤄지는 방역조치와 활동은 해외에서도 롤모델로 삼을 만큼 효과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시·박림화, 컨벤션(국제회의)에 대해 기업을 위한 필수 경제활동으로 인정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초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중대본회의에선 전시·박람회, 국제회의(컨벤션)는 필수 산업·경제부문임을 고려해 2단계 시 시설 면적 4㎡당 1명으로 인원을 제한하고 100인 이상 모임·행사 기준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경력 20년이 넘은 한 전시주최회사 대표는 "11월 이후 전시·박람회에서 확진자나 감염 전파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넉 달 만에 입장을 바꿔 이전보다 더 강한 기준을 적용하려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며 "이러면서 국민들한테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라고 말하는 건 이중적인 태도 아니냐"고 꼬집었다.정부는 5일 공청회를 통해 공개한 새로운 네 단계 거리두기 개편안을 2~3주간 전문가와 관련 협회·단체 의견을 수렵해 내용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전시주최자협회 관계자는 "새로운 거리두기 개편안에 대한 업계의 반대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고, 현실에 맞는 기준을 제안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