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미 뿜어내는 꽃과 사물…"아름다움과 악마성은 같다"

美 사진작가 메이플소프 국제갤러리서 '모어 라이프' 展

에로티시즘·금기의 도발 100여점 전시
작품 '수위' 높은데도 관람객 북적

리사 라이언 국제갤러리 제공

‘2층 전시장에는 성적 표현의 수위가 높은 작품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관람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K2 전시관 2층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판이다. ‘19금’ 표식이나 관람 제한은 없다. 하지만 신체 곳곳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누드, 가학적 성행위를 묘사한 수위 높은 사진을 마주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예고다.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1989)의 국내 첫 개인전 ‘모어 라이프(More life)’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강렬하고 탐미적인 이미지의 작품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평일 100~200명, 주말엔 하루 500여 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특히 20~30대의 반응이 뜨겁다. 누드, 동성애, 사도마조히즘을 담은 충격적인 작품이 적지 않은데도 하나하나 주의 깊게 감상하는 관객이 대부분이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아직까지 전시에 대한 항의나 돌발 상황은 없다”고 말했다.

두 송이 튤립

메이플소프는 ‘에로티시즘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미학’이라는 찬사와 ‘금기의 도발’이라는 평을 동시에 받은 문제적 작가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프랫인스티튜트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했다. 1970년대 초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큐레이터의 권유로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특히 패션 화보와 초상, 정물에서 탁월한 예술적 감각을 선보였다.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던 시대에 치밀하게 계산된 채광과 구도로 사진 역시 예술이라는 답을 내놨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43세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하기까지 남긴 작품 2000여 점 가운데 100여 점을 선보인다.

그의 사진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강한 집착이 드러난다. 그의 프레임 안에선 꽃과 사물도 관능을 뿜어낸다. 연인이 서로에게 몸을 기울인 듯한 ‘두 송이 튤립(Two Tulips)’, 뒤편에 피어오르는 연기와 날카로운 칼날이 내리꽂힌 수박이 긴장감을 빚어내는 ‘수박과 칼’ 등이 대표적이다. 흑인과 백인 남성 둘의 옆모습을 나란히 배치한 1984년 작품 ‘켄 무디와 로버트 셔먼’은 대비와 균형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용우 서강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피사체의 본질을 꿰뚫는 찰나를 포착해 완벽한 서사성으로 펼쳐냈다”고 설명했다.

수박과 칼

메이플소프는 시대가 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한 작가였다. 여성의 몸은 가냘파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던 때에 그는 여성 보디빌더 리사 라이언의 몸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탄탄한 근육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긴장감을 통해 ‘아름다운 몸’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지 정면으로 묻는다.

문제적 작가로서의 면모는 2층에 전시된 ‘X포트폴리오’ 연작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약물과 섹스에 탐닉했던 그의 삶이 특유의 탐미적인 시선에 투영돼 있다. 신체 부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학대에 가까운 상황을 연출하면서도 구도와 형식은 엄정하게 유지한다. “아름다움과 악마성은 같은 것”이라고 했던 그의 말을 구현한 작품들이다.

메이플소프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1970년대 펑크록 스타 패티 스미스를 비롯해 배우 리처드 기어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등 유명인의 초상을 만나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이다. 이번 전시는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도 함께 열린다. 부산점에서는 꽃과 초상, 정물 사진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