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당사자가 해고사유 알아도 서면으로 통지 안하면 위법"

당사자가 자신의 해고사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사측이 해고사유와 시기 등을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았다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A씨가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고 9일 밝혔다.A씨는 2009년부터 현대중공업 국제법무팀에서 근무하며 법률 자문 등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A씨의 근무평가 성적은 좋지 않았다. A씨는 법률적 분석력이 미흡하고 조직 적응도와 팀워크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A씨는 근로계약 종료 위기에 놓였으나, A씨의 상사가 그에게 근무성적을 개선할 기회를 줬다. 하지만 A씨의 근무성적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이에 사측은 2015년 A씨에게 계약종료(해고) 통지서를 보냈다.

A씨는 불복 소송을 냈다. 먼저 근무평가의 객관성 부족을 지적했다. 업무 처리 방향을 두고 상사인 B상무와 이견이 생겨 사이가 나빠졌는데, B상무가 고의로 낮은 점수를 줬다는 것이다. 절차적 문제도 주장했다. A씨 측은 “회사가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명시해 서면으로 통보하도록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27조에도 반한다”고 주장했다.1·2심은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상무가 A씨와 사이가 나빠짐에 따라 고의적으로 근무평가를 낮게 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실제로 A씨는 불성실하게 계약서 검토 업무를 수행했고, 직속 상관에게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A씨 측의 절차적 문제제기도 배척했다. 사측이 실질적인 면담을 통해 A씨에게 해고사유 등을 알려주는 절차를 거쳤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형식적으로 계약종료 통지서에 해고사유의 기재가 없다는 것만으로 부당한 절차상의 위법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항소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해고 대상자가 해고사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사용자가 해고를 서면으로 통지하면서 해고사유를 전혀 기재하지 않았다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해고통지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해고 시 서면통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조항의 취지가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를 해고하는데 신중을 기하게 함과 아울러, 해고의 존부 및 시기와 사유를 명확히 함으로써 사후에 이를 둘러싼 분쟁이 적정하고 용이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