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철이라 펀드 심사 못해!"…3주째 개점휴업 중인 금감원

매년 인사철마다 '감감 무소식'

불필요한 가서류 요구도 문제
늑장 심사에 출시 적기 놓치기도
"민간 기업에선 상상도 못할 일
상급기관의 갑질 행태 바꿔야"
A자산운용사는 지난 1월 초 금융감독원에 펀드증권 신고서를 여러 건 제출했다. 연초부터 주식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올해엔 펀드로 자금이 유입될 것이란 기대에서다. 하지만 3월 중순에 접어들고 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언제까지 심사를 마치겠다는 안내도 받지 못했다. A자산운용사는 올해 사업계획도 세우지 못한 상태다.

금감원의 펀드심사가 한 달 이상 지연되면서 자산운용사들의 펀드 출시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금감원은 인사이동에 따른 업무적응 때문이라고 하지만 증권업계는 상급기관의 ‘갑질’로 보고 있다. 불필요한 서류를 요구해 심사를 지연시키는 행위도 관행화된 것으로 전해졌다.9일 운용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1월 말부터 지난달 말까지 펀드등록 업무를 사실상 중단했다. 1월 말 부서장 인사와 지난달 정기 인사를 앞두고 심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달부터는 업무를 재개하기로 했지만 이번엔 업무적응으로 심사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사 관계자는 “인사이동, 업무파악 등 내부적인 사정으로 휴업하는 것은 민간기업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며 “상급기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또 다른 갑질”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관행은 매년 2월 인사철마다 반복되고 있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단순한 업무 지연이지만 운용사들에는 막대한 타격이다. 운용사들은 금감원의 심사를 받지 못하면 신규 펀드를 설정하지 못한다. 시장 상황에 맞춰 펀드를 준비했는데, 금감원의 심사 지연 때문에 출시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한 운용사 대표는 “시장의 트렌드에 맞춰 펀드를 준비해 출시했는데, 등록이 미뤄지면서 뒷북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는 위기에 몰린 운용업계를 더 위태롭게 하고 있다. 직접투자가 급증하면서 최근 1년간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만 15조7154억원이 순유출됐다.

불필요한 서류 제출을 요구해 심사를 늦추는 관행도 고착화됐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운용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펀드를 접수하기 3~4주 전에 가서류를 제출하라고 운용사들에 요구하고 있다. 이 또한 금감원의 갑질이라는 게 운용사들의 시각이다.

운용사 관계자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품의 가서류까지 중복으로 제출하면 공모펀드 하나 내놓을 때까지 최소 한 달이 걸린다”며 “인사철까지 겹치면 두세 달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심사가 어려우면 권한을 다른 기관에 넘기거나, 심사 인력을 대폭 늘려야 하지만 어느 하나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사후 보고제로 운영되는 사모펀드도 접수가 지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모펀드의 경우 운용사가 설정한 후 금감원에 보고하는 구조다. 운용사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접수한 사모펀드를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라임, 옵티머스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금감원은 어떤 사모펀드가 시장에 출시되는지도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감원은 심사팀을 둘로 나누는 등 조직개편까지 했지만 인력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모펀드 전수조사 등으로 업무가 증가했지만 그만큼 인력이 충원되지 않았다”며 “매일 야근해도 업계가 체감할 수 있는 수준까지 심사 속도를 끌어올리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의명/전범진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