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 믿음을 무기로 절망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다"

'위대한 설계' 공저자 믈로디노프의 스티븐 호킹 회고록 번역출간
온몸이 마비되는 역경에도 세계적 물리학자가 된 스티븐 호킹 박사는 반세기 넘도록 항상 죽음의 가능성을 마주하며 살아냈다. 절망의 연속이었을 삶이 무너지지 않고, 승리를 거둔 원동력은 무엇일까.

호킹 박사의 역작 '위대한 설계'의 공저자인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는 믿음이 가장 큰 무기였다고 말한다.

2018년 3월 14일 호킹 박사가 타계한 지 3년을 맞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 '스티븐 호킹: 삶과 물리학을 함께한 우정의 기록'(까치 펴냄)의 저자 믈로디노프는 "스티븐은 신을 믿는 대신 자기 자신을 믿었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스티븐은) 매일 밤 침대에 들면서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병원에 들어가면서 곧 나오게 될 거라고 믿었다.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살아남을 거라고 믿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돈이나 명성 때문이 아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고 믿었다.

계속되는 삶 동안 깊이 잠들 수 없는 고통이나 다른 사람이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 먹여주고 몸을 씻겨줘야 하는 수모보다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한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연구원 출신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인 믈로디노프는 이 회고록에서 '위대한 설계'를 함께 썼던 시기인 2006년부터 2010년까지를 중심으로 호킹 박사의 개인적 삶을 깊숙이 파고든다. 호킹 박사는 21살에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진단을 받았다.

처음 이 병을 진단한 의사는 그에게 여명이 몇 년 남지 않았다고 말했고, 그는 자신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쉬지 못해서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불치병에 걸린 여느 환자들처럼 슬픔의 단계를 거쳤던 그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어느 순간부터 죽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형당하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다가 희생당하는 꿈을 몇 번이고 꾸었다.

그는 꿈들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저자는 호킹 박사가 "우리 모두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는 추상적인 생각이죠, 나에겐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고 전하면서 그의 몸은 쇠약해졌지만, 마음은 만개했다고 말한다.

그는 의미를 찾기 시작했고, 우주와 우주 속 인류의 위치에 관한 존재론적 질문을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가족도 꾸리고 싶어졌고, 유명인이 됐을 때는 고통받는 사람, 특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저자는 호킹 박사가 캘리포니아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하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소개한다.

수십 년간 온갖 시련을 겪었으면서도 열정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박사님에게는 물리학이 인생이죠"라고 말하자 그는 코를 찡그리며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시를 하고서는 타이핑을 시작했고 컴퓨터는 이런 문장을 말했다.

"사랑이 인생이에요.

"
호킹 박사는 ALS를 진단받은 해인 1963년에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제인 와일드와 만나 2년 뒤 결혼해 세 자녀를 낳고 30년을 사랑했지만,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가 되면서 서서히 멀어졌다.

제인이 자신의 외도를 털어놨을 때 호킹 박사는 둘의 관계를 허락했다고 한다.

당시 호킹 박사도 간호인이던 일레인 메이슨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고, 48세 때 일레인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나 일레인의 정신적 문제와 호킹을 폭행했다는 의혹 등에 따라 65번째 생일이 막 지났을 때 두 번째 이혼을 경험한다.

이혼 소송 절차가 끝나던 날 호킹 박사와 함께 있었다는 저자는 그의 눈에는 종일 눈물이 고여 있었다며 그가 일레인을 내보내지 못한 것은 비서의 말대로 '그가 모질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가 일레인을 너무나 그리워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위대한 설계'가 출판된 이후에 그의 곁에는 또 다른 간호인 다이애나가 있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호킹 박사보다 39살이나 어렸고 조울증을 앓았지만, 두 사람은 영혼에서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호킹 박사는 2013년 다이애나에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선 "난 한쪽 무릎을 꿇지 못해"라고 말하며 청혼했다.

그러나 자녀들의 반대에 결국 청혼을 철회했고 둘은 좋은 친구로 남았다고 한다.

저자가 호킹 박사에게 그가 이룬 많은 발견, 업적, 성취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하나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몇 분 뒤 컴퓨터에서 "내 아이들이요.

"라는 대답이 흘러나왔다고 전한다.

아울러 책은 개인적 우정 이야기들을 '호킹 복사', 무경계 가설 등 호킹 박사가 이룬 물리학적 업적들과 엮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한다.

호킹 박사가 "모두가 사긴 하지만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이라고 말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시간의 역사'를 이해하기 어려운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썼던 저자답게 재치 있는 문장들로 엮었다. 하인해 옮김. 302쪽. 1만7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