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원세훈 '직권남용 무죄' 재심리하라"…파기환송(종합)

권양숙·박원순 사찰 유죄 취지…"국정원 직권남용에 엄격해야"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직권남용 혐의의 일부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국정원 직원의 직권남용죄는 국정원의 영향력과 특수성 등을 고려해 더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 손실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의 상고심에서 직권남용 혐의에서 일부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대법원은 원 전 원장이 권양숙 여사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해외 방문 때 국정원 직원에게 미행을 지시한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미행 지시는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실무자들에게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때에 해당한다"며 '직무집행의 보조 행위'로 본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고 판시했다.

공소시효가 지나 면소 판결이 내려진 승려 명진에 대한 사찰 부분은 유사한 공소사실을 묶어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러 개의 행위를 하나로 판단하면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만큼 원심이 직권남용 여부를 재심리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의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해서는 국정원법이 별도로 직권남용죄를 처벌하는 점 등을 언급하며 형법상 직권남용죄보다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국정원법 처벌 조항의 입법 경위와 취지, 국정원의 법적 지위와 영향력·특수성, 엄격한 상명하복의 지휘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직권남용죄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원 전 원장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 적폐 청산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전면적인 재수사를 받았다. 결국 2017년 12월부터 1년간 국정원 예산을 사용해 민간인 댓글 부대를 운영한 혐의 등 총 9차례 기소됐다.

그는 민간인 댓글부대 '외곽팀'을 운영하는 데 63억원의 국정원 예산을 횡령해 국고를 손실한 혐의, 오프라인 우파단체 지원금으로 1억5천여만원의 예산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국가발전미래협의회'라는 민간단체를 만들어 진보 세력을 '종북'으로 몰아가는 정치 공작을 벌이고 여기에 47억여원을 예산을 사용한 점도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위 풍문을 확인하는 이른바 '데이비드슨 사업'에 예산을 사용한 혐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상득 전 의원 등에게 국정원 특수활동비 2억원을 뇌물로 전달한 혐의도 있다.

1심은 이런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다만 13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중 권 여사와 박 전 시장의 해외 방문 때 국정원 직원에게 미행을 지시한 사실을 제외한 나머지 12개 혐의는 무죄 판결이 났다.

2심에서는 뇌물액이 128억여원에서 156억여원으로 늘었지만 직권남용 혐의가 모두 무죄로 뒤집히면서 징역 7년에 자격정지 5년이 선고됐다.

원 전 원장과 공모한 혐의를 받은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방송 장악' 공모 혐의로 함께 재판을 받은 김재철 전 MBC 사장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유지됐다.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이 확정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