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의혹' 세종산단 예정지 가보니…"외지인 벌집주택 수십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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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은 원래 복숭아가 유명한 곳인데 이제 투기로 유명한 곳이 돼버려서……."
11일 찾아간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 대를 이어 이곳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는 마을 주민들은 씁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이 세종 스마트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되기 직전 공무원 등이 보상을 노리고 조립식 주택을 지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어서다. 이 마을은 정부세종청사에서 북쪽으로 약 9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세종시는 1조5000억원을 들여 2027년까지 연서면 일원에 스마트국가산단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마을 주민 등에 따르면 2018년 마을 곳곳에 이 같은 조립식 주택 30여 채가 들어섰다. 기존에 집이 한 채 있던 부지를 쪼개 여러 채의 집을 이른바 '벌집주택' 형태로 지어졌다. 안기철 전 와촌리 이장(61)은 "집이 한 채 있었던 자리에 터를 닦더니 4채가 들어섰다"며 "갑자기 외지인들이 집을 새로 짓길래 의아했는데 얼마 뒤 산업단지가 생긴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마을주민은 "와촌리에만 이런 조립식 주택이 30여채 정도, 인근 야산이나 옆 마을 산단 예정지까지 합치면 100여채 정도 되는데 제대로 터 잡고 사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며 "결국 '딱지' 받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느냐"고 했다. 산단이 들어선 뒤 보상비를 받기 위해 살지도 않을 집을 지었을 거라는 의혹이다.스마트국가산단은 세종시 연서면 일원 약 277만6000㎡에 스마트산업과 연계한 신소재·부품업종 중심지를 조성하는 거대 국책사업이다. LH와 세종시가 오는 2027년까지를 목표로 산업단지를 조성한다. 총 사업비는 1조5000억원이다.
2018년 8월 국토교통부가 스마트국가산단을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선정했다.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세종시는 2018년 9월 연서면 와촌리, 부동리, 국촌리, 신대리 등 4개리 일원 약 366만336㎡에 대해 거래·개발행위를 제한했다. 조립식 주택 대부분은 거래·개발행위 제한 직전에 생겨났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설명이다. 공무원 등이 개입됐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투기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세종시와 세종경찰청은 투기 의혹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이날 세종시청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연서면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확정일 이전에 수십 채의 조립식 건물을 짓는 등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오늘부터 ‘부동산투기특별조사단’을 구성·운영해 강력하게 대처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류임청 행정부시장을 단장으로 8개 부서 17명이 참여해 산단 필지 토지거래 내역, 부동산등기부등본, 거래물건 현황 및 지분 쪼개기, 건축물 신축, 과수 등 식재를 조사할 계획이다. 조사 대상 기간은 2017년 6월 국토부 국가산단 지정을 위한 검토작업 착수일부터 스마트국가산단 후보지 확정일(2018년 8월 31일)까지다.이 시장은 "세종시 모든 공무원을 조사 대상으로 하되 스마트산단 직접 업무 담당자는 본인과 배우자의 직계존비속까지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위법행위가 확인될 경우 징계하고 고발조치할 방침이다.
안 전 이장은 아버지때부터 대를 이어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내가 60대인데 마을에서는 나이로 밑에서 손 꼽힌다"며 "평생 이곳에서 농사 짓고 살아온 70, 80대 노인들은 새로 터 잡고 살 길이 막막한데 외지인들이 사전에 산단 정보를 얻어 투기를 했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11일 찾아간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 대를 이어 이곳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는 마을 주민들은 씁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이 세종 스마트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되기 직전 공무원 등이 보상을 노리고 조립식 주택을 지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어서다. 이 마을은 정부세종청사에서 북쪽으로 약 9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세종시는 1조5000억원을 들여 2027년까지 연서면 일원에 스마트국가산단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갑자기 외지인들이 집 짓더니 산단 지정"
와촌리 마을 초입에는 조립식 패널로 지은 주택 10여채가 서 있었다. 대부분의 집에서는 거주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에어컨 실외기에 잡초가 감겨 있고 집 앞 마당에는 주소 안내판, 우편물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마을 주민 등에 따르면 2018년 마을 곳곳에 이 같은 조립식 주택 30여 채가 들어섰다. 기존에 집이 한 채 있던 부지를 쪼개 여러 채의 집을 이른바 '벌집주택' 형태로 지어졌다. 안기철 전 와촌리 이장(61)은 "집이 한 채 있었던 자리에 터를 닦더니 4채가 들어섰다"며 "갑자기 외지인들이 집을 새로 짓길래 의아했는데 얼마 뒤 산업단지가 생긴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마을주민은 "와촌리에만 이런 조립식 주택이 30여채 정도, 인근 야산이나 옆 마을 산단 예정지까지 합치면 100여채 정도 되는데 제대로 터 잡고 사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며 "결국 '딱지' 받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느냐"고 했다. 산단이 들어선 뒤 보상비를 받기 위해 살지도 않을 집을 지었을 거라는 의혹이다.스마트국가산단은 세종시 연서면 일원 약 277만6000㎡에 스마트산업과 연계한 신소재·부품업종 중심지를 조성하는 거대 국책사업이다. LH와 세종시가 오는 2027년까지를 목표로 산업단지를 조성한다. 총 사업비는 1조5000억원이다.
2018년 8월 국토교통부가 스마트국가산단을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선정했다.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세종시는 2018년 9월 연서면 와촌리, 부동리, 국촌리, 신대리 등 4개리 일원 약 366만336㎡에 대해 거래·개발행위를 제한했다. 조립식 주택 대부분은 거래·개발행위 제한 직전에 생겨났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설명이다. 공무원 등이 개입됐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세종시 "부동산특별조사반 구성, 강력 대응할 것"
기자가 조립식 주택을 둘러보는 사이에 조립식 주택 소유주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나는 공무원도 아니고 LH 직원도 아니다"며 "LH가 이슈가 되자 투기꾼으로 몰려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LH 직원들처럼 내부 정보로 땅을 사들여서 몇십억원씩 해먹는 게 진짜 투기고 나쁜 짓 아니냐"며 "세종에 살다가 개인적 이유로 세컨하우스가 필요해 지인에게 소개 받아 집을 짓고 가끔 오가며 지내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인근 조립식 주택 소유주들에 대해 묻자 "길게 마주친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고 한 뒤 차를 타고 떠났다.투기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세종시와 세종경찰청은 투기 의혹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이날 세종시청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연서면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확정일 이전에 수십 채의 조립식 건물을 짓는 등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오늘부터 ‘부동산투기특별조사단’을 구성·운영해 강력하게 대처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류임청 행정부시장을 단장으로 8개 부서 17명이 참여해 산단 필지 토지거래 내역, 부동산등기부등본, 거래물건 현황 및 지분 쪼개기, 건축물 신축, 과수 등 식재를 조사할 계획이다. 조사 대상 기간은 2017년 6월 국토부 국가산단 지정을 위한 검토작업 착수일부터 스마트국가산단 후보지 확정일(2018년 8월 31일)까지다.이 시장은 "세종시 모든 공무원을 조사 대상으로 하되 스마트산단 직접 업무 담당자는 본인과 배우자의 직계존비속까지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위법행위가 확인될 경우 징계하고 고발조치할 방침이다.
"관 주도 개발이 투기 부추겨"
마을 주민들은 국가산단 예정지 입지 선정 과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안 전 이장은 "주민들이 반대하는데 굳이 국가산단을 여기 짓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며 "이렇게 관 주도로 밀어붙이니까 거기서 정보를 들으면 무조건 개발된다는 생각에 투기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입지를 선정했다가 주민 반대 목소리를 듣고 사업이 변경될 수도 있으면 누가 감히 투기를 하겠느냐"고 했다.안 전 이장은 아버지때부터 대를 이어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내가 60대인데 마을에서는 나이로 밑에서 손 꼽힌다"며 "평생 이곳에서 농사 짓고 살아온 70, 80대 노인들은 새로 터 잡고 살 길이 막막한데 외지인들이 사전에 산단 정보를 얻어 투기를 했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