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금융의 정치 도구화를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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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재·보궐선거 앞두고게임이론은 사람들의 유인을 분석해 전략적 상황에서 어떤 행동이 관찰될지를 예측한다. 게임이론을 정치적 투표 분석에 적용한 이론 중에 중앙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가 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다수결을 사용하는 민주국가의 선거에서 절반 지지를 획득하는 후보가 이기므로 각 후보는 적어도 절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선거 공약을 내건다. 예를 들어 소득에 따라 세금을 걷어 보조금을 주는 공약을 내걸면서 상위 49%에게서 세금을 걷어 하위 51%에게 보조금으로 나눠준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면 보조금을 받는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그 후보를 지지하므로 선거에서 이긴다. 거꾸로 하위 49%에게서 세금을 걷어 상위 51%에게 보조해주는 전략을 사용할 수도 있으나 하위에서 걷을 수 있는 세금이 많지 않으므로 얼핏 보기에도 실현 가능성이 작다.
'퍼주기 정책' 봇물 터졌는데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한
중앙銀의 국채 발행으로 인해
화폐가치가 훼손된다면
그 피해 복구하기 어려워
이인호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다수결 투표제도를 통해 정권을 결정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후보들이 인기를 얻으려 애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투표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빛을 보지 못한다. 물론 선거에서 공약을 내걸면 토론이 이뤄지고, 투표자가 그 내용을 알면서 후보자를 선택하니 검증을 거치게 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투표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검증조차 받지 않은 정책을 지지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다고 선택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사회적 피해를 낳을 수 있다.최근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렵다 보니 모든 정당이 국민의 마음을 사기 위해 선심성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걸고 있다.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으므로 이 부분에 선심성 정책이 집중되는데, 이 중에도 금융시장을 이용해 모은 돈을 대중에게 나눠주려는 시도는 선거 과정에서 검증조차 되지 않는 정책으로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금융시장은 기본적으로 현재 자신의 자금 수요보다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가진 돈보다 자금 수요가 많은 사람에게 빌려주고 나중에 원금과 사용료인 이자를 합쳐 돌려받는 거래를 하는 곳이다. 이런 대차거래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여러 기법이 활용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빌려준 돈을 나중에 어떻게 하면 잘 돌려받을까에 관한 것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를 위해 각종 정보를 활용해 차주의 신용도를 추정하고 그에 따라 대출 금리와 액수를 결정한다. 또 한 번이라도 빚을 상환하지 않으면 신용도를 낮게 조정해 빚 갚을 유인을 높게 만든다.
이런 모든 고려는 돈을 빌려주는 사람 처지에서는 당연하다. 예를 들어 예금자는 은행에 돈을 예금하면서 그 은행이 대출 심사를 제대로 하길 바랄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이 은행들에 신용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출해주라고 요구하는 것은 예금자의 바람을 거스르는 정책이다. 과연 은행이 대출할 돈이 자신의 돈이라도 같은 얘기를 할 것인지 묻고 싶다. 만일 이런 정치적 요구가 실행된다면 그 피해는 우리나라 금융시장 전체가 보게 된다. 은행에 예금한 돈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은행에 예금하지 않을 테고 대규모 인출이 발생하면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최근 중앙은행이 국채를 발행시장에서 직접 인수하도록 만들려는 정치적 시도도 매우 위험하다. 한은법 75조에 중앙은행의 국채 발행 시장 인수를 허용한 것이 이 방법을 평화 시에 사용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이 규정은 전쟁과 같이 국회가 재정 지출에 대해 토의하기 어렵고, 더욱이 민간이 참여하는 발행시장 운영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급하게 사용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조항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평상시 재정 지출 계획에 대한 적절한 토의를 거치지 않고 민간 금융시장의 반응을 무시한 채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국채를 발행, 우리나라 화폐의 가치가 훼손된다면 그 피해는 사후적으로 복구하기조차 어렵다.
정치권이 투표자들의 마음을 사려고 선심성 정책을 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선심성 정책에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고, 특히 금융을 정치 도구화하는 것은 그 비용이 막대하므로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