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빨리 진행된 병으로 사망…法 "개인 면역문제 아닌 업무상 재해"
입력
수정
입원 치료를 받던 근로자가 충분히 쉬지 못한 채 업무에 복귀해 사망에 이르렀다면 근로복지공단이 유족급여와 장의비용을 지급해야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산업재해 보상보험법에 따라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가 거절당한 근로자 A씨의 유가족에게 근로복지공단이 해당 급여 및 비용을 지급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10일 밝혔다.
의사는 A씨에게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내렸다. 그러나 A씨는 회사에 복귀에 근무를 재개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병가를 내고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에 이르렀다. 건강이 쇠약해진 A씨는 이듬해인 2015년 2월 폐렴으로 사망했다.
A씨의 배우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보상보험법에 따라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A씨의 사망 원인이 된 질병이 업무와 관련한 병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급여 등을 지급하지 않기로 처분했다.공단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A씨 유족 측은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A씨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공단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 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요 발생원인에 겹쳐서 병세를 일으키거나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가 침상에서 안정을 취하며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계속 업무를 처리하던 중 업무 및 휴직 처리, 상사와의 갈등 등 관련 스트레스에 노출되면서 상병이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실제로 A씨의 근무기록에 따르면 그는 질병을 진단받았던 시기에 일주일 평균 61시간을 일했다. 그해 추석 직전에는 13일 동안 휴일 없이 하루 평균 11시간 이상을 근무했다. 치료가 길어지면서 A씨와 센터장 간 불화가 있다는 소문이 돌자 휴대폰 메모장과 수첩에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적어놓거나 '산재 문의, 노동부 질의(인신공격)'와 같은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
A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질병은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와는 상관이 없다는 게 2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대한의사협회에 사실을 조회한 결과 A씨가 진단받은 막성 사구체신염의 발병 원인은 특별한 원인 없이 나타나는 '특발성'인 경우가 (성인에게서) 가장 많다"고 밝혔다. 면역이 약해져 폐렴이 걸리는 과정을 두고서도 업무와의 연관성은 찾기 힘들다고 보고, "개인적인 신체적 요인이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인"이라고 판시했다.대법원은 이같은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휴식이 필요한 질환을 가진 상태에서 장시간 근로 등으로 육체적·정신적 과로가 누적된 상황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과학적 데이터를 고려했다. 재판부는 "연구 결과에 비춰봤을 때 A씨의 질환으로 진단받은 환자가 진단 후 3개월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은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 한 일본 학자가 A씨와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 949명을 약 7년 간 추적관찰한 결과, 이 기간 동안 사망한 사람의 비율은 4.3%였으며 20년 이후에도 생존해 있는 비율은 90%를 넘겼다. 이에 비춰 재판부는 "질병이 자연적인 진행속도를 넘어 급격히 악화돼 합병증까지 발생, 사망에 이르렀다면 유족이 합당한 급여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A씨가 의사의 소견을 따르지 않고 업무에 즉시 복귀한 것도 직장 내 업무부담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업무상 요인 외에는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여 급격하게 악화될 만한 요인을 찾기 어렵다"며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산업재해 보상보험법에 따라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가 거절당한 근로자 A씨의 유가족에게 근로복지공단이 해당 급여 및 비용을 지급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10일 밝혔다.
1심 "입원 중에도 근무할 정도…과로·스트레스로 인한 산업재해"
A씨(사망 당시 50세)는 2009년부터 한 택배회사의 지방센터 운영과장으로 근무해왔다. 지난 2014년 9월, 그는 건강검진을 통해 단백뇨 진단을 받았다. 이후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미만성 막성 사구체신염이 있는 신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신증후군이란 신장에 문제가 생겨 소변에 다량의 단백질이 배설되는 질환이다.의사는 A씨에게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내렸다. 그러나 A씨는 회사에 복귀에 근무를 재개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병가를 내고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에 이르렀다. 건강이 쇠약해진 A씨는 이듬해인 2015년 2월 폐렴으로 사망했다.
A씨의 배우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보상보험법에 따라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A씨의 사망 원인이 된 질병이 업무와 관련한 병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급여 등을 지급하지 않기로 처분했다.공단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A씨 유족 측은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A씨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공단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 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요 발생원인에 겹쳐서 병세를 일으키거나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가 침상에서 안정을 취하며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계속 업무를 처리하던 중 업무 및 휴직 처리, 상사와의 갈등 등 관련 스트레스에 노출되면서 상병이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실제로 A씨의 근무기록에 따르면 그는 질병을 진단받았던 시기에 일주일 평균 61시간을 일했다. 그해 추석 직전에는 13일 동안 휴일 없이 하루 평균 11시간 이상을 근무했다. 치료가 길어지면서 A씨와 센터장 간 불화가 있다는 소문이 돌자 휴대폰 메모장과 수첩에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적어놓거나 '산재 문의, 노동부 질의(인신공격)'와 같은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
2심 "면역능력은 개인적 요인, '산재' 아냐" → 대법 "病, 예상보다 급속히 악화됐다면 산재"
그러나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근로복지공단 측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고 A씨 유족 측에 급여와 장의비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A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질병은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와는 상관이 없다는 게 2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대한의사협회에 사실을 조회한 결과 A씨가 진단받은 막성 사구체신염의 발병 원인은 특별한 원인 없이 나타나는 '특발성'인 경우가 (성인에게서) 가장 많다"고 밝혔다. 면역이 약해져 폐렴이 걸리는 과정을 두고서도 업무와의 연관성은 찾기 힘들다고 보고, "개인적인 신체적 요인이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인"이라고 판시했다.대법원은 이같은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휴식이 필요한 질환을 가진 상태에서 장시간 근로 등으로 육체적·정신적 과로가 누적된 상황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과학적 데이터를 고려했다. 재판부는 "연구 결과에 비춰봤을 때 A씨의 질환으로 진단받은 환자가 진단 후 3개월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은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 한 일본 학자가 A씨와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 949명을 약 7년 간 추적관찰한 결과, 이 기간 동안 사망한 사람의 비율은 4.3%였으며 20년 이후에도 생존해 있는 비율은 90%를 넘겼다. 이에 비춰 재판부는 "질병이 자연적인 진행속도를 넘어 급격히 악화돼 합병증까지 발생, 사망에 이르렀다면 유족이 합당한 급여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A씨가 의사의 소견을 따르지 않고 업무에 즉시 복귀한 것도 직장 내 업무부담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업무상 요인 외에는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여 급격하게 악화될 만한 요인을 찾기 어렵다"며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