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 10년…눈덩이처럼 커진 민간인 피해

2011년 3월 학생들이 담벼락에 한 대통령 비판 낙서가 발단
외세 개입으로 정부군 승기 잡아…38만7천명 사망
시리아 내전이 오는 15일로 만 10년을 채운다. '아랍의 봄' 민중봉기가 중동 전역으로 번지던 2011년 3월 초 시리아 남서부 다라의 학생들은 담벼락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비판하는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가혹행위를 당했다.

이에 분노한 '혁명의 요람' 다라의 시민들은 반정부 시위에 나섰고, 첫 시위가 발생한 3월 15일을 시리아 내전의 시작으로 본다.
◇ 시리아 휩쓴 민중의 분노…내전으로 변모
알아사드 정권의 철권통치에 분노한 반정부 시위대는 삽시간에 시리아 전체를 휩쓸었다. 알아사드 정권은 강경 진압으로 응수했지만, 그럴수록 시위 규모는 커졌고 수백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러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1년 8월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했으며, 아랍연맹(AL)은 시리아의 회원국 자격을 정지했다.

그런데도 알아사드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자 반정부 시위는 차츰 내전으로 변해갔다. 시위대는 총을 든 반군으로 변모했으며, 반군은 2012년 8월 시리아 제2의 도시인 알레포를 장악하고 수도 다마스쿠스를 향해 진격했다.

반군의 기세에 시리아 영토의 4분의 1만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밀려난 알아사드 대통령은 실각 직전의 위기까지 몰렸다.

여기에 2014년부터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이라크를 근거로 발호하면서 시리아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 외세의 개입과 쪼개진 국토
알아사드 정권은 이란의 지원으로 간신히 전선을 유지했으나, 2015년 9월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전세 역전에 성공했다.

러시아의 도움으로 제공권을 장악한 알아사드 정권은 2016년 12월 알레포를 탈환했으며, 이듬해 5월에는 알레포에 이은 시리아 제3의 도시 홈스를 되찾았다.

2018년에는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 동(東)구타와 남부 전체를 탈환했으며, 반군을 북서부 이들립 주와 알레포·하마 주 일부에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족은 정부군이 남하하는 반군을 저지하기 위해 북동부를 비운 사이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미군과 함께 IS 격퇴전의 선봉에 선 시리아 쿠르드족은 차츰 세력을 넓혀갔으나, 이들이 자국 내 쿠르드족과 손잡을 것을 우려한 터키는 2019년 시리아 국경을 넘어 시리아 쿠르드족을 공격했다.

현재 시리아 북서부는 반군이, 북동부는 쿠르드족이 장악했으며, 러시아·터키·이란이 시리아 내에서 영향력을 겨루는 상황이다.

결국 내전 발발 후 10년이 지난 현재 시리아는 몇 조각으로 쪼개진 채 외세의 입김에 휘둘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 사망자 38만7천 명…난민 1천200만 명
내전이 10년째 이어지면서 시리아인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인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내전 발발 이후 현재까지 약 38만7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약 560만 명의 시리아인이 전쟁을 피해 터키, 레바논, 요르단 등으로 떠났으며, 시리아 내부에서도 67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피란길에 올랐다고 밝혔다.

유엔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에서 38차례 화학무기가 사용됐으며, 이 가운데 32번은 시리아 정부군이 사용했다.

2013년에는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약 1천400명이 사망했다.

시리아의 인프라와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은 10년간의 전쟁 비용을 1조2천억 달러(약 1천350조 원)로 추산했다.

영국의 자선단체인 세이브 더 칠드런은 시리아 어린이의 60% 이상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으며, 유엔은 시리아인 200만 명 이상이 극빈층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시리아 전력부에 따르면 전력망의 70%가 내전 기간 파괴됐으며, 유엔은 시리아 의료 종사자의 70%가 시리아를 탈출한 것으로 집계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시리아 어린이 240만 명이 학교를 떠나야 했으며, 학교의 3분의 1은 폐허가 되거나 무장세력의 기지로 이용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