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빠지는 통화정책…'스태그플레이션' 오나 [김익환의 외환·금융 워치]

10년물 국고채 금리 2년3개월 만에 최고치
韓美 기대인플레이션율 고공행진
통화정책 무력화 양상

돈풀어도 물가만 올라
경기침체 속 물가급등 우려 커져
'합리적 기대가설' 현실화
10년물 국고채 금리가 2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데다 소비자물가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행 통화정책 목표인 금융안정·물가안정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한국 경제가 자칫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급등) 양상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리·물가 고공행진

1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2일 10년물 국채 금리는 0.065%포인트 오른 연 2.092%에 마감했다. 지난 2018년 12월4일(연 2.102%) 후 최고치다. 3년물 국고채 금리도 0.044%포인트 상승한 연 1.223%로 지난해 2월20일(연 1.234%) 후 가장 높았다. 같은 날 5년물 국채 금리도 연 1.596%로 2019년 11월15일(연 1.604%) 후 최고치다. 한은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지난해 5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0.5%로 내렸지만 국채 금리를 비롯한 시장금리는 작년 하반기부터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은이 지난 10일 시장금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국고채 2조원어치를 긴급 매입했지만 금리 오름세는 꺾이지 않았다.

한국 시장금리가 뛰는 것은 미국 국채금리가 오르는 동시에 인플레이션 우려감이 커진 결과다. 미 국채 금리는 지난 12일(현시시간)에 0.09%포인트 상승한 연 1.625%에 마감해 지난해 2월12일(연 1.637%) 후 가장 높았다.

여기에 한국과 미국 안팎으로 인플레이션 우려는 커지고 있다. 향후 1년 동안의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나타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달 2%를 기록해 2019년 8월 후 가장 높았다. 지난 10일 미국의 기대인플레이션(BEI) 2.28%로 2014년 7월31일(2.29%) 후 가장 높았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퍼지면 물가를 고려한 채권의 실질 이자수익은 줄어들게 된다. 그만큼 채권 가격이 내려가 채권 금리는 오른다. 동시에 인플레이션 기대로 통화정책이 긴축적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시장금리를 밀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주열 한은 총재와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한목소리를 낸 것과 다르게 물가 지표는 상승 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무력화된 통화정책…합리적기대가설 현실화

사진=연합뉴스
통화정책이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의 합리적 기대가설이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설은 사람들이 모든 정보를 이용해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확장적 통화정책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확장적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물가만 끌어올린다고 봤다. 외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보다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중앙은행이 코로나19 직후 시중에 유동성을 대거 풀어 놓은 결과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올라가면 근로자와 기업이 각각 임금과 제품 가격을 올리게 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근로자가 기대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이는 다시 기대 인플레이션을 밀어 올려 인플레이션이 거세질 수 있다”고 했다.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거나 산출량을 줄이는 동시에 제품가격을 높인다.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임금상승→고용감소·제품값 상승→기대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물가는 오르고 고용은 줄어드는 등 스태그플레이션 흐름은 더 굳어진다. 중앙은행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있다.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가계·기업 심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억제하는냐에 따라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서영 삼성선물 연구원은 "파월 의장과 재닛 옐런 장관 등이 물가 오름세가 일시적이라는 발언으로 기대 물가 심리를 꺾으려고 할 것"이라며 "시장이 정책당국의 발언과 의지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따라 인플레이션 향방이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