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더 오르나…헤지펀드, 원유 매수 늘렸다 [원자재포커스]

이달들어 각국 헤지펀드를 비롯한 글로벌 투자자 중 유가 추가 상승에 베팅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가 이미 작년 동기 대비 두배 이상으로 뛰었는데도 그렇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원유 수요가 개선되는 반면 공급은 제한적인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헤지펀드, 다시 원유상품 매수포지션 늘렸다

16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9일까지 일주일간 각국 헤지펀드를 비롯한 투자자들의 6대 석유 선물옵션 계약량을 분석한 결과 매수 포지션 규모가 매도 포지션 규모를 약 1600만배럴 웃돌았다.순포지션 규모상 매수세가 매도세를 앞선 것은 약 3주만이다. 지난달 중순 이후부터 한동안은 매도 포지션이 매수 포지션을 900만~1100만배럴 가량 웃돌았다.
원유 주요 상품 순포지션 규모는 작년 11월3일부터 지난 2월16일까지 15주간 연속으로 매수 포지션이 우세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 재개가 가속화되면서 원유 수요가 살아난 영향이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 이후엔 헤지펀드 등이 줄줄이 원유상품 매도에 나섰다. 유가가 이미 상당히 올랐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소속 13개국과 러시아 등 10개 산유국 연합체인 OPEC+의 감산 논의가 난항을 겪는다는 소식이 나온 영향이다.

"에너지시장 공급, 한동안 늘기 힘들어"

하지만 OPEC+가 감산 조치를 연장하면서 원유 시장 공급량이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 퍼졌다. OPEC+는 지난 4일 일평균 700만 배럴 규모의 원유 감산 조치를 한 달 연장하기로 했다. 하루평균 산유량을 기존 대비 약 150만 배럴 늘릴 것이란 시장의 예상과는 반대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OPEC+ 감산과 별도로 자체적으로 하고 있는 하루평균 100만 배럴 규모의 감산을 지속하기로 했다.
원유시장 안팎에선 미국에서도 에너지 생산량이 빨리 늘 가능성은 낮다는게 중론이다. 헤지펀드들이 단기·중기적으로 유가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보고 매수 포지션을 늘린 이유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의 라울 르블랑 애널리스트는 “미국 주요 기업들은 작년 크게 줄이거나 아예 중지했던 주주 배당을 늘려야 해 자금을 증산에 투입할 여유가 없다”고 설명했다.올초 새로 출범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정책 기조도 근거다. 바이든 행정부는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대량 발생하는 원유·석유제품보다 친환경에너지를 더 늘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 내무를 총괄하는 내무부 장관엔 이름난 환경보호론자가 인준됐다. 미국 상원은 지난 15일 민주당 소속인 뎁 할랜드 뉴멕시코주 하원의원을 내무장관으로 인준했다. 할랜드는 앞서 장관직 청문회 당시부터 석탄과 우라늄 등 자원발굴로 인해 훼손된 연방토지를 복구하는 데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새로운 시추홀 개발 등에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수요 개선 아니라 공급 제한이 동력…큰 상승폭은 어렵다는 지적도

반면 일각에선 작년에 코로나19로 크게 꺾였던 에너지 수요가 완전히 회복하지 않고 있어 유가 상승 잠재력이 크지는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가격 상승이 공급 측면에서 야기된 만큼 남은 상승폭이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최근 투자량이 몰린 상품을 봐도 그렇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9일까지 일주일간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상품은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와 영국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원유(WTI)였다. 헤지펀드 등이 900만배럴을 사들였다. 미국 가솔린은 매수 규모가 600만배럴, 미국 디젤은 300만배럴, 유럽 가스오일은 400만배럴이었다.

존 켐프 로이터통신 원유시장 선임애널리스트는 "추이상 원유 매수세 비중이 연료 매수세를 웃돈다"며 "최근 투자자들이 실제 석유제품 소비 회복보다는 지속적인 공급 제한을 근거로 투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17일 오전 7시30분 기준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4월물은 배럴당 64.97달러에 거래됐다. 브렌트유 5월물은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배럴당 68.39달러에 팔렸다. 1년 전 가격과 비교하면 WTI는 2.25배, 브렌트유는 2.1배 가격이 높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