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파월의 '포커페이스', 시장을 속일 수 있을까

15일(현지시간) 뉴욕 금융시장은 전반적으로 차분했습니다. 뉴욕 증시에서 다우와 S&P 500 지수는 장중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상승폭은 크진 않았습니다.

지난주 주요 지수의 상승폭이 컸던데다(다우 4.1%, S&P 500 2.6%, 나스닥 3.1%) 무엇보다 16~17일 미 중앙은행(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있습니다. 17일 오후 2시(한국시간 18일 새벽 3시) 발표될 통화정책 성명서와 새로운 경제 전망은 현재 금융시장 환경을 확 바꿔놓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합니다. 또 16일 아침엔 핵심 경제지표인 2월 소매판매와 산업생산도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망세가 이어진 가운데 장 막판 매수세가 몰리며 다우는 0.53%, S&P 500 지수는 0.65% 올랐고 나스닥은 1.05% 상승한 채 마감됐습니다.

채권 시장도 안정적 흐름을 보였습니다. 지난 금요일 연 1.642%까지 올랐던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이날 1.61% 안팎에 머물렀습니다.
지난달 초부터 금리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시장에선 Fed의 추가 완화 조치를 기다려왔습니다. 단기채 비중을 낮추고 장기 채권 매입을 늘리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T), 국채 금리 상한선을 정해 추가 상승을 막는 수익률곡선 컨트롤(YCC) 등을 취할 것이란 기대가 컸습니다.하지만 정작 3월 FOMC를 앞둔 지금, 그런 기대는 높지 않은 편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Fed는 이번 회의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채권 금리 급등에 대해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 주 "눈길을 끈다"면서도 "우려할 만한 무질서한 흐름이나 지속적인 금융시장 긴축은 보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금리 상승은 경제 전망의 개선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게 Fed 위원 다수의 해석입니다. 그런 시각을 가진 Fed가 갑자기 뭔가 조치를 취한다면 이상할 겁니다.

월가 관계자는 "지난주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회의를 보니 Fed도 말로만 때우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습니다. ECB는 채권 매입 재원인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 규모는 유지하되 2분기에 매입 속도를 높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발표 당시 시장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따져보면 조삼모사에 불과하다"며 "Fed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월가는 경기가 회복되면서 Fed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조사에 따르면 월가 경제학자들은 2022년 말부터 금리 인상이 시작될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경제활동이 아직 본격 재개된 게 아니기 때문에 Fed가 이번 FOMC에서는 기준금리 조정이나 테이퍼링과 관련해 기존 입장(완전고용 및 물가 목표 달성을 위한 '상당한 추가 진전'이 이뤄질 때까지 현 통화정책 유지)을 반복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은행에 대한 초과지급준비금 이자율(IOER) 조정도 없을 것이고, 작년 4월 팬데믹 사태 속에 은행의 국채 매입을 늘리기 위해 도입했던 '보완적 레버리지비율'(SLR) 규제에 대해서도 별 조치 없이 넘어갈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SLR은 자산이 2500억 달러가 넘는 은행은 국채를 사면 추가로 자기자본을 확보해야하는 걸 면제했던 것인데 이달 말(3월31일)로 만료됩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은행에 대한 특혜라며 종료를 주장해왔지요. 이 조치가 종료되면 은행들은 자기자본을 확충하기보다 국채를 매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부에선 그 물량이 700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SLR은 반드시 FOMC에서 결정해야할 사항이 아니어서 이번에는 그냥 넘긴 뒤 월말까지 지켜보며 채권 시장이 불안해질 경우 연장을 발표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결국 지켜볼 건 경제 전망과 점도표(dot plot)입니다. 올해 경제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예상치 등 경제 전망은 소폭 개선시킬 것이란 게 대체적 예상입니다.
Fed 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의 경우 당초 상당한 변화를 점치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Fed 위원들이 최근 금리 상승세를 경기 개선 전망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언급해온 만큼 그런 전망을 점도표에 담을 것이란 시각이었죠. 월가 관계자는 "점도표가 많이 바뀌면 Fed가 정말 금리 인상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이 강해져 채권 금리가 또 다시 뛰기 시작할 것"이라며 "이를 감안해 Fed 위원들이 점도표를 많이 조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17명의 Fed 위원들은 작년 12월 점도표에서 2023년까지 기준금리 유지를 예상했습니다. 2022년 인상 예상은 1명, 2023년 인상 예상은 5명에 그쳤었습니다.

Fed와 제롬 파월 의장의 이런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오는 5월1일까지 모든 성인에게 백신을 맞추고 7월4일 독립기념일엔 부활한 경제 속에서 코로나 종식을 선포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1조9000억 달러의 재정부양책을 추가로 퍼붓고 있습니다.
경제 회복 속도는 빨라질 것이고 물가도 올라갈 겁니다. 그러면 Fed는 추가 완화가 아니라 긴축을 고려해야할 수 있습니다. 몇 달 뒤인 하반기부터 그래야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뭔가 완화적 조치를 내놓는다는 건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통화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고, 추후 긴축을 시작할 때 충격도 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융시장이 요동치지만 않는다면 입으로만 비둘기를 날리면서 '포커페이스'로 몇 달 더 버틴 채 하반기로 넘어가고 싶은 것이죠. 정말 경제가 좋아진다면 그 때쯤 시장 관심은 금리와 Fed로부터 경제와 실적으로 옮겨갈 수 있으니까요.

과연 파월 의장의 '포커페이스'는 통할까요?

채권 시장의 트레이더들은 현재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향후 경기 회복과 함께 금리는 계속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니까, 트레이더들의 손실이 커질 것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가진 채권을 최대한 팔아야하는데 문제는 Fed입니다. 혹시라도 그새 완화적 조치를 내놓다면 다시 금리 하락(채권 값 상승)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럼 조급하게 너무 싼 값에 채권을 판 것으로 드러나게 되겠죠.

그래서 Fed의 추가 조치를 기다리며 매도 시점을 재고 있었는데, 지난달 말 갑자기 연 1.2~1.3% 수준이던 10년물 금리가 1.6~1.7%대로 확 뛰어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월가의 한 트레이더는 "이번에 Fed가 금리를 한 번 눌러준다면, ‘채권을 팔 때’라고 말하는 트레이더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최근 연 1.3~1.4%대에서 금리가 안정될 것으로 보고 추가 매수한 연기금 등도 있다고 들었다. 이들은 최근 2~3주 사이에 큰 손실을 봤고 손절매 시점을 찾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대기 매도세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파월 의장의 '포커페이스'가 이번 FOMC에서 성공하더라도 채권 시장 안정세는 오래가진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4월부터는 미국 국채의 최대 외국인 투자자인 일본 금융사들이 시장에 복귀합니다. 또 Fed가 채권 시장이 더 흔들리면 OT, YCC를 들고 나올 가능성도 낮지만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또 다른 월가의 트레이더는 "경기 회복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Fed가 연 1.75% 이상의 금리를 허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시장과 Fed의 줄다리기 속에 당분간은 연 1.5~1.7%대가 지켜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시장에서는 10년물 수익률이 1.6%대까지 급하게 상승한 데 대해 '과매도'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단기에 갑자기 매도세가 몰려 금리가 펀더멘털에 비해 너무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골드만삭스가 대표적입니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의 마이크 스웰 글로벌포트폴리오총괄(채권)은 지난 9일 팟캐스트에서 "헤지펀드 등 수많은 기회주의적 투자자들이 국채를 공매도하는 등 금리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추세는 단기적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그는 " 미국 경제엔 팬데믹 이전에 인플레가 없었고 앞으로 작년 기저효과 때문에 물가가 오를 테지만 그것도 단기에 그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스넬 총괄은 "2022년을 예상하면 성장이 정상화되고 물가도 정상화될 것이다. 그리고 Fed는 여전히 완화적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며 "이는 결과적으로 채권 시장에도 나쁘지 않을 것이고, 위험자산에도 좋은 환경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