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피해자 "與·박영선 사과 진정성 없다" [일문일답]

언론 앞에 모습 드러낸 박원순 피해자
박영선 사과에도 "진정성 없다" 눈물
"'피해호소인' 명명 의원들 징계해야"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가 17일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기자회견장에 직접 나와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의 사과는 진정성도 현실성도 없는 사과였다"며 관련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피해자는 이날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는 사람들'이 진행한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내 "사과를 하기 전 사실에 대한 인정과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민주당의 사과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강조했다.그는 '피해호소인' 발언을 했던 의원들을 향해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피해자는 "'피해호소인'으로 명명했던 의원들에 대해 직접 사과하도록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가 따끔하게 혼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남인순 의원을 꼬집으며 "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민주당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17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 금나래 중앙공원에서 금천구 지역발전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음은 피해자와 취재진 간의 일문일답.

◆ 피해자분이 직접 나서서 말씀하게 된 계기는.
지금 상황에서 본래 (서울시장) 선거가 치러지게 된 계기가 많이 묻혔다고 생각한다. 피해사실을 왜곡하고 상처 줬던 정당에서 시장이 선출됐을 때 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든다. 저는 후회가 덜한 쪽을 선택하고 싶었다. 제가 말을 하고 어떤 결과가 생겼을 때, 말을 안 하고 어떤 결과가 생겼을 때 중 그 후회의 무게가 더 가벼운 쪽으로 선택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서게 됐다.
◆ 피해사실을 밝힌 뒤 무수한 일이 있었다. 견디기 힘들었던 부분 무엇이었는지.
첫째는 신상 유출에 관한 내용이다. 수사기관에서 가명으로 조사받았고 저의 신상이 유출될 염려가 없었음에도 지지자들의 잔인한 2차 가해 속에서 하루하루 버텼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2차 가해 주도하고 있다는 면이다. 일터에서 저의 소명을 다해서 열심히 일했던 순간에 그러한 순간들이 저의 피해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이유로 사용되는 게 유감이었다.
◆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나온 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사과했다. 사과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나.
이낙연 대표와 박영선 후보는 어떤 것에 대한 사과인지 명확히 짚지 않았다. 민주당에는 소속 정치인들의 중대한 잘못이라는 책임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으로 피해 사실을 축소·은폐하려 했고 투표율 23% 당원투표로 서울시장 선거에 결국 후보를 냈다. 지금 선거캠프에는 내게 상처 줬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과를 하기 전에 사실에 대한 인정과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사과는 진정성도, 현실성도 없는 사과였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진정성 있는 사과의 조건이 무엇인가.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만, 선거 기간에 의견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조심스럽다.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사과의 방법으로는 민주당이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피해호소인'으로 명명했던 의원들에 대해 직접 사과하도록 박영선 후보가 따끔하게 혼냈으면 좋겠다. 그 의원들에 대한 당 차원의 징계가 있어야 한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흔들었다. 저는 지난 1월에도 남인순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남인순 의원으로 인한 상처와 사회적 손실은 회복하기 불가능할 지경이다. 남인순 의원이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민주당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당 차원의 징계를 요청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해자 글을 대독하고 있다. /사진=뉴스1
◆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 인권위 발표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권위에서 제 주장뿐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들과 참고인 진술들에 비춰 사실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당시 기대했던 것보다는 실체적 진실에 가까워졌다. 제 이야기가 신빙성을 인정받았다는 것만으로도 피해 사실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 인권위에서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선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방조 혐의로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건은 제가 고소를 한 것이 아니라 제삼자의 고발에 의해 조사가 시작된 건이다. 그 당시에도 제 상사들이 함께 위력 아래에 놓여있었다고 생각한다. 인권위 결정문에서처럼 그분들의 잘못에 대해선 사법기관에서 판단을 받게 되겠지만 그들의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인권위 판단을 대신 말씀드리고 싶다. 지난한 조사과정에 계속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해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말하기의 시기는 오늘이 마지막일 것으로 생각한다.이제 그분들이 조치하고 행동하셔야 할 때다.
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